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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Dec 20. 2023

회사 휴직 중 받은 하위고과

대기업에서 휴직자가 받는 고과

영화를 보고 나가는 길, 뜬금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휴대폰 화면을 보니 더 황당하다.

회사 부서장의 연락처가 떠 있는걸 보고 한동안 뇌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잘못 걸려온 건 아닐까.. 난 휴직중이라 연락올게 없는데..'

그가 진심으로 나의 안부가 궁금해서 연락할리도 없다.


무슨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더니 먼저 안부를 물으며,

연말 시즌이라 고과를 알려줘야한다며 용건을 말한다.




내가 휴직한 사유는 자명하다.

밤을 새도 끝나지 않는 업무량, 직장내괴롭힘으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여기에 한 몫 더하여,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맘대로 바꿔버린 업무가, 전혀 맞지 않아 스트레스가 극도로 달했다.

난 하염없이 두드려 맞는 돌이자 동네 북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오랜기간 고민에 또 고민을 거듭한 후 휴직을 신청했다.


강산이 한차례 바뀐걸 볼 때까지, 오랜기간 회사생활을 했지만, 어쩌면 난 조직에 맞지 않는 인물이다.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묵묵하고 조용한 나는, 업무를 몰아주기 딱 좋은 성격이다.

쓰러지기 직전까지 일을 하는 성실한 노동자이다.

또는 여러 길을 욕심있게 탐구하지 못하고, 시키는 일만 하며 한 길만 걸어온 나는 참 많이 부족한 사람일것이다.




휴직자에게 있어 고과는 자비가 없다. 휴직자는 언제나 깔아주는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휴직을 신청하며 예상은 했지만, 내심 고과를 기대를 했던것도 있다.

휴직을 언급한 순간부터 3개월 가량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진단서를 핑계로, 인수인계를 핑계로, 중요한 고객사 행사까지 보고 가라는 핑계로..

어쩌면 나는 핵심인물이었다.


가을 단풍이 지고 차가운 겨울이 되고서야 나를 놓아줬다.

그렇기에 한 번쯤은 그 작은 가능성에 은근한 기대를 했던게 아닐까.

머리로는 이해하면서 마음으로는 살짝 서글펐다.




놀랍게도 부서장은 또 다른 가스라이팅을 시도하고 있었다.

수고해준것도 있지만, 업무적으로 끝 마무리가 매끄럽지 않았다는 점을 들먹인다.

휴직 직전 나의 평균 퇴근시간은 밤 10시였다.

인수인계를 받아야 할 직원들은 일이 있다며 언제나 나보다 먼저 퇴근했고,

인수인계 이전 시기에도, 나의 업무 중 알아두면 좋을것 같은 내용들을 알려줘도 반응은 늘 시큰둥했다.

'본인 업무인데 도대체 왜 나에게 알려주는거지?' 라는 태도였고, 때론 바쁘니 나중에 받겠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100% 모든 것이 다 인수인계가 될 수는 없다.

탐구하고 알아보고 찾아야하는 영역조차 인수인계를 받은게 없다고 하며, 전임자를 탓하면 그만이다.

떠난 사람에게 모든걸 뒤집어 씌우는 케이스를 , 회사에서 참 많이도 봐왔기에 아주 놀랍지 않은 일이다.

충분히 예상했기에, '내가 이 만큼 해줬는데, 서운하게 그런 평가를 받다니!' 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안좋은 기분은 정확히 1시간만에 멈췄다.

고과가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회사 내 이미지? 아니다.

내 인생기록에 남는것도 아니고 퇴사하면 끝이다.

퇴사하면 모든 기록이 날아간다. 대학 졸업장처럼 남는게 아니라는거다.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게 없다.


한때 나는 이 고과에 목숨을 걸만큼 욕심을 내기도 했다.

고과가 안나왔을때 엉엉 대성통곡하기도 했고, 잘 나왔을때는 잠깐이지만 어깨가 올라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일을 잘하고 못하고 차이는 전혀 아니었다.

그저 고과를 주는 사람의 마음일뿐, 아주 객관적이지 못한 주관적인 판단이었다.


되돌아보니 무얼 위해서 그렇게까지 살았을까 싶다.


가장 크게는 연봉일것이다.

단지 그 다음년도 연봉이 동결되거나 낮아져 기분이 나쁜것이다.

회사에서 임원이 되고싶은 꿈이 없는 나는

그까짓 고과따위에 내 기분을 망치지 않기로 다짐했다.

고과는 곧 내가 아니다.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그런 결과를 받은거라면 그저 고과를 주는분께 잘 보이지 못했다는것 뿐이다.

사회생활을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도 아니다.

고과는 대부분 조직에서의 줄타기와 오버 쇼잉의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난 이걸 잘 못하는 편이다.


나오면 그만인 회사보다, 언젠가 반드시 나와야 할 회사보다,  가장 중요한

앞으로 살아갈 내 삶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더 에너지를 쏟기로 했다.


나는 좋은것만 생각할것이다.

내가 누리는 지금 이 휴직생활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꿈만 같다.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중이다.

원하는 삶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나가고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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