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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Oct 01. 2020

사랑니를 뽑고, 영혼이 뽑히다

미루고 또 미루다가 뽑게 된 사랑니 발치 후기

13살 때 치아 CT를 찍은 직후 치과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려나봅니다. 사랑니가 4개 다 있네요.”


당시 새로운 치아가 가장 뒷편에 숨겨진 상태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

20대가 되어도 아무 반응이 없으니 ‘다행스럽게 안나는건가’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5살 무렵이었다.

가장 맨 뒤에 위치한 치아의 뒤편에서 뭔가 들이 일어나고 있는걸 느꼈다.

무언가 자라나고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불편했고, 살짝 불쾌했다.  

이미 내 치아는 교정을 하면서 알맞게 갖춰져 있는 상태였고, 더 이상 치아가 날 만한 공간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뒷편에서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나는건가 싶었다.


며칠동안 간지러웠고, 뜨끔뜨끔 뭔가 아픈것같기도 하고, 내 신경을 교묘히 거슬리게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괜찮아졌다. 뭔가 솟아난 느낌이 드는건 무엇 때문일까?

혀로 살짝 만져보고 , 손으로도 만져보니 아주 맨 뒤쪽의 살점이 도톰하게 올라와있었다.      

‘그래. 차라리 여기서 멈춰라..! 제발 더 이상 이 뽑는 건 안하고 싶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다시 치아 가장 뒷칸에서 또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교묘하게 나의 신경세포들을 은근히 건드린다. 간질간질한 느낌에 누군가 망치로 살짝 내리치는 통증과 함께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빨리 정체를 드러내길 바랬다.

일상 생활을 할 수는 있었지만, 강렬한 무언가가 뒤쪽에서 격렬하게 반응하며 입 안을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혼자만 느낄 수 있는 어색함과 불편함이 밀려들었다.  

   

불편한 느낌이 한동안 지속되어 어느날 혀로 대보니 뾰족하고 딱딱한 물체가 느껴졌다. 손가락을 길게 뻗어 대 보니 바로 느껴졌다. 치아의 극히 일부가 세상 밖으로 나온듯했다. 4개 중 2개의 아랫니, 윗니가 먼저 세상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어떤 날은 간지럼 태우듯이, 또 어떤 날은 주먹으로 오른쪽 왼쪽 사정없이 마구 두드리는듯한 극심한 성장통을 겪으며 결국 사랑니 4개가 모두 세상밖으로 나왔다.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사랑니 잘못뽑으면 큰일나”, “사랑니를 뽑으면 치매 걸릴 확률이 높아. 그러니 가능하면 뽑지마” , “사랑니 뽑으면 무척 힘드니까 밥은 꼭 든든히 먹고 뽑으러 가야해” , “사랑니는 주변 치아 썩기 전에 얼른 뽑아내야해” ......     


10여년전 교정할 때 치아 4개를 뽑아내서인지 공포증이 너무 컸다. 무엇보다 뽑으면 아프다는 말이 너무 싫었다. 치아 발치에는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두고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사랑니들은 종종 매우 말썽을 부렸다. 거슬리게, 교묘하게, 불쾌하게 나의 신경선 위에 교묘하게 올라타 괴롭히는 느낌이었다. 나무가 있다면 뿌리채 뽑아버리고 싶은 느낌이 들만큼 살짝 미쳐버린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난 뽑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사랑니가 앞의 이빨들을 모두 밀어버리는 강력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상했다. 이전의 교묘하게 아픈 느낌이 아니었다. 오른쪽 치아들이 모두 멍든것처럼 아팠고, 정신적으로 띵하고 멍한 느낌도 들었다. 다음날은 지속된 치아통증으로 극심한 두통이 느껴져 타이레놀까지 꺼내먹었다. 그리고 바로 알아챘다.

사랑니를 빼야할 날이 다가왔음을..      


바로 다음날 치과에서 CT를 찍었고, 모두 빼야한다는 결론이 났다.

윗니는 똑바로 잘 나서 뽑는데 크게 무리는 없을듯하다고 했다.

그러나 아랫니 2개는 매복 상태인데, 조금 어려운 수준이라고 한다.

오른쪽은 살짝 대각선 형태로 나 있으니, 살을 째고 치아를 쪼갠 후 뽑아내야하고,

왼쪽은 똑바로 났으나 살에 많이 파묻힌 매복니라 살을 더 많이 째야한다고 했다.   

  

이왕 뽑아야 하는 상이니 빨리 뽑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치과에서는 하루에 2개를 빼면 너무 힘드니, 하나씩 뽑자고 한다.

기다리고 있는 내게 한 장의 동의서를 가져왔다.

뭔가 싶어 내용을 들여다봤더니, 합병증, 마비증세...등이 가득담긴 동의서였다. 사인을 하기가 두려워졌다.

간호사분은 한 번도 그런 상황이 일어난적은 없으나 치과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계속해서 그리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가장 불편했던 오른쪽 윗니를 뽑았는데, 솔직히 마취까지 하니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는데, 30초도 안되어 뽑고 이렇게 안 아플수가 있으랴 싶었다. 주변사람들 말이 일단은 맞는듯했다.

윗니는 안아프고, 아랫니가 매우 아프다는 그 말..!      


추석연휴 전에 하나를 더 뽑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쉬는 날이 긴 만큼 아랫니로 뽑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전부터 굉장히 불쾌한 손님같았던 왼쪽 아랫니를 뽑고싶었다.

그토록 비좁은 공간 안에 어쩜 그렇게 용케도(?) 자리를 찾아내서 나왔을까.       


그러나 치과에서는 대각선으로 뉘어진 오른쪽 아랫니가 이미 썩고있으니, 먼저 뽑는게 좋을듯하다고 한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여, 바로 마취에 들어갔다.

그.런.데. 윗니보다 확실히 마취 강도가 세다. 혀와 볼까지도 얼얼해지고 감각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래쪽 사랑니 발치는 윗니 뽑을때와는 달리 아플 수 있다고 하며, 항생제를 포함한 주사도 엉덩이에 세 방 놔주셨다. 한동안 뻐근하고 아팠다. 해부학적으로 윗니와 아랫니는 구조가 다르기에, 아랫니가 좀 더 아프고 붓는다고 한다.      


마취 상태라 크게 감각은 없었지만, 타는 냄새 , 쇠 냄새 , 치아를 살짝 갈아버리는 느낌, 살점을 꿰매는 실이 입술에 닫는 찝찝한 상황을 한가득 느끼며 20분의 시술 끝에 발치하게 되었다.

     

마취가 풀리기 전까지는 차라리 괜찮았다. 집에 와서 쉬는데, 항생제 주사 때문인지 잠이 쏟아져내렸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에 잠만 잤다.

다음날은 회사를 가야했다. 머리는 대충 감고, 아침은 조그만 티스푼으로 벌려지지 않는 입 안에 간단한 죽만 살짝 쑤셔넣고 가는길에 치과에 잠깐 들러 소독을 받고 출근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점심쯤 꼬맨곳이 점점 쓰리고 아렸다. 옆 직원이 “약 처방받은거 먹었어요?” 라고 묻는데, 그제서야 약 처방을 받지 않았다는게 기억났다. 느낌이 싸해서 무작정 집으로 갔던 것이다.


어마무시한 통증이 몰려들 즈음, 약국으로 가서 처방받은 약을 빠르게 먹었다.

다행히 약 성분이 빠르게 몸 안에 금방 퍼져나갔는지 통증이 약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피곤함과 찝찝함은 계속해서 밀려왔고, 퉁퉁 부은 오른쪽 얼굴탓에 혼자 점심을 먹으러 본죽으로 갔다. 그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와 말도 섞고 싶지 않았고, 온전히 혼자 식사하는게 가장 편하다고 느꼈다. 어떻게 내가 퇴근시간까지 버텼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는 녹초가 된 듯 쓰러져 또 내리 잠만 자기 시작했다.


약은 하루 세 번 반드시 챙겨먹어야했다. 약 기운이 떨어지는 그 순간부터는 꿰맨 부위의 하염없는 통증이 밀려온다. 그냥 그 상황에서는 잠을 자는게 약인듯했다. 아무리 자도 끝없이 피곤했다. 게다가 퉁퉁 부은 볼 안에 큰 멍이 들어있는 느낌이라 편히 잘 수도 없었다. 몸을 움직일때마다 볼 안의 멍이 왔다갔다 움직이는 느낌이 매우 불편했다. 얼음찜질팩을 볼에 대고, 또 대도 붓기는 가시지 않는듯했다. 얼음팩을 잠깐 떼고 있었더니, 그 부위가 열감을 느껴 빨갛게 달아오르길래 바로 또 얼음찜질팩을 붙이고 있어야했다.


몸의 면역력이 사라지고 체력은 가장 최전방으로 밀려난 느낌이었다. 몸도 뜨겁고, 몸살기운도 있어 추석연휴가 시작된 그 날에는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약속에도 나갈 수 없었다. 사실 어림도 없었다.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자력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만들어준 죽을 티스푼으로 겨우 떠먹으며 그저 감사함만 느껴질뿐이었다. 아플 때 곁에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이렇게 역지사지로 느끼게 되었다.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는 잠깐의 순간에도 목에 뭔가 걸린 듯 아팠다. 누군가 볼과 목을 살짝만 쳐도 기절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니를 발치한 다음날에 출근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어제로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출근을 할 수 없을거라 장담했다.

통증 투병(?) 와중에 왼쪽 아래 사랑니를 한 번 더 빼야하는 두려움이 크게 느껴졌다.


사랑니를 뺀 월요일 오후 3시 직후부터는 살아있는 내가 아니었다고 판단한다. 수요일부터 시작된 추석연휴가 없었다면, 회사안에서 기절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니 발치 후 3일째인 목요일부터 붓기가 조금 사그라들었고, 오후 1시부터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두 발로 걸어 밖에 나가서 무언가를 사오는 행위 자체가 대견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매사에 감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것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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