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회사원의 건강검진
10년 8개월차에 퇴사를 하고 1년 6개월이 지난 오늘,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와중 잊고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만성 두통을 달고 살았다. 회사에서는 끊임없이 내게 새로운 일거리를 던져주었다. 이미 용량이 꽉 찼으니 더 이상의 인풋(배움)을 튕겨내는 뇌(brain), 어떻게든 꾸역꾸역 머릿속으로 넣어버리려는 나의 의지. 언제나 만성피로를 달고사는 나의 일상은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 고되고 힘들었다.
'두통' : 난 왜 아플까..
머리에서 '띠-' 소리가 자주 들리고, 머리가 매우 무겁고 아픈 느낌에 나는 본능적으로 매일 두피를 주물렀다. 양 손을 꽉 주먹쥐어 깍지 낀 손으로 (측두근쪽을) 꾹꾹 눌러주면, 막힌 혈관이 조금은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시 모니터를 보는 순간 두통은 재발했다. 두통인지도 모를만큼 만성화가 되어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정말 나와 같을까..' 활기차게 생활하는 동료들을 보면 이것은 나만의 문제라는걸 확신했다. 나는 결코 그들과 같은 에너지를 낼 수 없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아픈 사람이었던가.. 스스로 과거를 되짚어보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멀쩡했었는데.. 이건 성장하면서 불현듯 내게 생긴 질병이구나..' 너무 절망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강검진에서 뇌 MRI 검사를 신청했다. '별 일 없을거야..' 생각했지만, 혹시나 별 일이 있을까봐 매우 걱정했던 그 날. 검사결과는 '정상'이었다. 의학적으로 알 수 없는 원인불명의 두통은 해결책이 없는, 평생 달고살아야 할 나만의 병이었다.
'안구건조증' : 의학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데..
눈을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껴야 할만큼 많은 업무량, 안구건조증은 야금야금 내게 다가왔다. 작은 엑셀안의 숫자들을 분석해야했고, (사내 프로그램) 작은 버튼 하나에도 실수를 유발할까 싶어 꼼꼼해야 했던 사무직 업무. 눈에 쉴 틈을 주지 못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8할 이상의 시간을 모니터 세계에 눈을 집중시켜야만 하는 현실. 나는 언제나 졸린눈이었다.
"많이 지쳐보여" ,"피곤해보인다.".. 나를 보는사람마다 내게 했던 말이다.
"저 원래 이래요. 하하.." 스트레스를 안받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 나를 갑갑하게 만들었다.
안구건조증 증세가 극에 달했던 시절, 회사 옆 빌딩의 안과에 매일같이 방문했다. 의사는 내게 말했다.
"흠.. 눈물샘이 적은 편도 아니고, 정상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안구건조증 눈이 아닌 정상 눈이에요."
"선생님, 그럼 저는 왜 이렇게 눈이 건조한걸까요? (회사업무) 일해야하는데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을 정도에요."
의사는 작은 원인이라도 제거해보자며, 안구건조증 시술을 권했다. 시술 후, 몇 시간동안은 괜찮은듯했지만 효과는 잠시뿐이었다. 안약부터 처방받은 온갖 약을 눈에 넣어도 마찬가지로 효과는 아주 잠깐뿐이었다.
'그 의사가 돌팔이 아닐까..' 싶어 병원 내 수많은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도 했으나 결과는 이상 무(無).
건조 증세가 심해질때마다 안과로 직행했다. 할 수 있는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구건조증때문에 우울 증세가 생겼어요..." 아주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자 앞에 앉은 젊은 의사의 반응이 가관이었다.
"풉...." 입을 틀어막는 그를 보았다. 의학적으로는 건강한 나의 안구 차트, 그 앞에 앉아서 내뱉는 내 말이 그의 웃음보를 자극했나보다.
그 시기,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시행되고 일이 많이 줄어들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내 눈에 잠깐의 쉼을 줄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업무에서 자잘한 실수를 유발할 수 밖에 없었던건 이 병 때문이었다. 안구건조증은 평생 달고 살아가야 할 나만의 병이었다.
불현듯 예고없이 찾아오는 질병이 있듯, 두통과 안구건조증은 평생 달고살아야 할 나만 느낄 수 있는 치료제 없는 병이었다.
무념무상 : 한 번쯤은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6개월간의 휴직, 난 이 휴직을 반드시 써야만했다. 내 호르몬이, 내 영혼이 이 (회사생활의) 루틴을 격렬히 거부하고 있었다. 어쩌면 꽤 오랜기간동안의 몸부림을 내가 애써 외면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평안히 살고자 했다. 6개월간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아침엔 자고싶은만큼 푹 잤고, 아무런 스트레스도 걱정도 없이 살았다. 대자연의 선물들 , 하늘/산/강/해돋이/해넘이를 한없이 바라보고 만끽했다. 회사다닐 때 두둑히 받은 보너스로 끊어둔, 마사지와 두피관리도 틈날때마다 받았다. 모니터 세계에서 벗어나 자연의 삶을 만끽한지 5개월 차, 복직을 1개월 남기고 신기하게도 두통 증세가 사라졌다. 동시에 안구건조증도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졸린눈이 사라지자, 숨겨진 쌍커플이 세상을 향해 드러났다.
내 몸속의 장기들이 건강했던 어린시절로 회귀한 느낌이었다. 10년 넘게 나를 괴롭혔던 이 고통에서 벗어난 삶, 세상사람들은 이런 에너지로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고 있던것이었다. 나는 그걸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맑고 또렷한 눈빛, 건강한 정신상태. 나는 한 번 맛본 이 세계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10년 8개월차, 나는 대기업을 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