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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Jan 01. 2021

2만원 원데이 쿠킹클래스에서 영혼이 털리다.

눈이 앞에 달린게 감사해

새로 지어진 화려한 백화점 고급 부띠끄안에는 베이킹 스튜디오가 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투명유리를 통해 스튜디오 안에서 빵 만드는 수강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나다니면서 언뜻 수강료를 보니 10회 100만원 단위로 꽤 비쌌다. 

외관부터가 고급스럽게 인테리어된 곳이기에 어느정도 예상했던바다. 

책상들이 쭉 늘어진 곳곳에 각 책상별로 연인,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 가족단위가 수강생이 되어 베이킹 강사의 강습에 따라 열심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난 지나가면서 빵 굽는 수강생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고, 행복에 찬 그들을 동경했다.      


그럼에도 난 굳이 비싼 돈을 주고 배울 엄두까지는 내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원데이클래스를 기간한정으로 2만원 할인가만 받는다는 이벤트 공지를 보게 되었다. 

저렴한 수강료였기에 부담이 없었고, 너무 설레는 마음으로 바로 신청했다. 


약속된 일정에 가니 나를 포함하여 수강생은 총 2명, 베이킹을 도와주는 선생님 1명이 있었다. 

처음으로 베이킹을 도전해보는 날이었고, 딸기케이크 만드는법을 배워보는 시간이었기에 큰 포부를 품고 갔다. 

뜻이 맞다면 언젠가는 제빵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까지 펼쳐보았다.      


먼저 딸기케이크의 빵을 만들기 위해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고 휘핑기로 흰자를 섞고 설탕을 넣어 머랭을 만드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베이킹 강사는 팔이 아플테니 잠시만 쉬는 시간을 갖자고 하며 베이킹 클래스 수강료판을 펼치더니 관심이 있다면 배워보라고 권유한다. 

솔직히 배우고 싶었으나 내겐 부담스러운 가격대였다. 

앞에 있는 수강생은 꾸준히 배우는것까지는 생각이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뭔가 분위기가 싸해졌다. 아니 싸해지도록 만드는 느낌이었다. 민망한 분위기를 싫어하는 나는 고민하는척을 했다. 적어도 이렇게 해줘야만 할 것 같았다. 솔직히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오븐에 넣어둔 얇은 빵이 나왔다. 강사의 타겟은 내가 된 듯 했다. 

빵이 식을때까지 잠시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도 내게 베이킹 능력이 있는듯하니 한 번 배워보라며 계속 영업을 한다. 이런걸 끊어내지 못하는 것도 능력의 문제인것일까. 가르치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내 옆에 와서 수강료 판을 펼쳐 보이는 강사가 너무나 안쓰럽기도 했고 점점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당장 백만원대의 수강료를 오늘 결제하고 등록 하는건 부담이었기에 넌지시 수강료의 문제로 당장 결정하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자 강사는 10만원하는 베이킹 도구틀을 무료로 주겠다, 수강료가 부담되면 5%까지 깎아줄 수 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알려주는데 한 번 등록해서 다녀볼 수 있지 않냐며 계속해서 옆에서 말을 건다. 틈틈이 생기는 쉬는 시간이 무서워졌다. 그 때마다 수강료판을 펼쳐보이는데 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만난 앞 수강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으나, 그녀는 이미 딱 잘라 말한 본인에게 굉장히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내겐 전혀 눈길도 주지 않고 쉬는 시간동안 여유롭게 휴대폰을 보거나 스튜디오 내부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강사는 무조건 한 건 영업해야한다는 강력한 강압을 받은듯했다.

 딸기케이크 포장까지 다른 직원에게 맡기고 마지막까지 내게 매달렸다. 

난 다시 한 번 수강료가 부담스럽다는 말을 건넸다. 아무생각없이 왔는데 이런 금액을 당장 결제하는건 부담이고, 카드 한도의 문제가 있어서 결제도 안된다고 거짓말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동시에 ‘딸기케이크 포장이 완성되는 순간 들고 후딱 나가버려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는 그렇다면 30만원 정도만 오늘 선결제하면, 나머지 금액은 3-4개월에 나눠 결제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대단한 혜택을 주는것처럼 말한다. 반드시 나를 잡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지는듯했다.  

   

처음에는 여유롭게 영업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점점 넘어오지 않자 구걸하는 모습을 보이고, 마지막에는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일부라도 당장 결제할 것을 명령하는 눈빛이었다. 

계속해서 붙잡는 강사에게 조금만이라도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며 완성된 딸기케이크를 받자마자 서둘러 나갔다. 나가는데 뒤에서 엄청난 레이저가 발사되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의 눈이 앞에 달려있다는게 너무 감사할 정도였다.      


2만원짜리 1시간(대략) 클래스동안 영혼이 털리는 느낌이었다. 이건 영업하는게 아니라 고문에 가까운듯했다. 쿠킹스튜디오를 나와 백화점까지 빠져나오자 어마무시한 부담감과 중압감이 한순간에 녹아내리는듯했다. 크게 뭔가 한 것도 없는데 진이 빠지고 힘들었다.     


다행히 집에서 먹어본 케이크는 정말 맛있었다. 이렇게까지 영업을 안했다면 등록을 곰곰이 생각해 볼 수도 있었을텐데, 오히려 발도 못 들일 트라우마를 영업한 건 아닐까.     

내 나이 20대 초반에 겪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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