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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Jan 06. 2021

자연이 알려주는 알람

사계절로 만나보는 유년시절

1999년 , 우리 가족은 한적한 시골마을로 갑작스레 이사갔고 난 그 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창문을 열면 산이 보이고, 개천이 흐르고, 텃밭을 가꾸는 동네사람들 그리고 놀이터에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 모임은 내게 익숙하고 당연한 일상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6층짜리 아파트에서 창문을 열면 그림같이 환상적인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비 온 뒤 , 선명하게 산 위에 펼쳐진 일곱빛깔의 무지개. 너무 예뻐서 계속 바라보다보면 어느순간 희미해지다가 사라진다. 마음속에 더 담아두고 싶었는데, 난 희미해지는 그 순간을 무척 아쉬워했다.      

운이 좋으면 1년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도 있다. 하늘을 새까맣게 덮고있던 박쥐떼들이 빨려들듯이 산 속 어딘가로 들어갔다가 몇 달 후 바깥으로 솟구치듯 나와 어딘가로 날아가는 모습들은 넋놓고 볼 수 밖에 없을만큼 신비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일상은 사계절 내내 늘 자연과 함께였다.  

   

)

하천에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모르는 사이지만 슬쩍 가서 물어보면 개구리알을 잡고 있다고 한다. 아주 작은 투명구슬 안에 점 하나가 콕 박혀져 있는데, 물고기알처럼 셀 수 없이 한가득 많았다. 개구리알 무더기는 아무곳에나 있지 않았고, 개천의 풀숲같은곳을 걷어내면 한가득 꼭꼭 숨겨져있었다. 나는 집으로 뛰어가 어항을 들고 달려내려온다. 부드럽고 무척 미끄럽고 갓 탄생한것같은 연약한 느낌이다. 꽉! 하고 주먹을 쥐어보면 알이 터질까 싶지만 한 개의 알도 터지지 않았다. 미끄러움 때문에 주먹을 펴면 모두 손 밖으로 빠져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만져보라고 해도 징그러워 못 만질 나이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자연이 내게 선물해준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보물찾기 놀이였다. 주변을 돌아보니 연두빛의 연약한 새순이 여기저기 피어나고 있다. 온갖 생물체들이 길가 여기저기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 봄이구나!’ 이렇게 자연은 봄이 왔음을 내게 알려줬다.               


여름)

창문을 열면 파릇파릇한 풍성함이 먼저 눈에 보인다. 앙상한 가지에서 연두빛이 돋아나더니 어느덧 온 세상이 풍성한 초록빛으로 변해버렸다. 날씨가 점점 더워진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여름이 다가올쯤 육상선수를 선발했다. 각 반에서 가장 잘 달리는 아이 1명씩을 선발하고, 그들끼리 경쟁시켜 최종 2명을 선발한다. 날쌘돌이 같은 난 늘 선발되었다. 각 학년별 육상부 선수들은 1시간 일찍 학교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학교 바로 옆 작은 산을 올랐다. 1명이 출발하면 뒤이어 다른 1명이 따라가는데, 뒤에 오는 사람에게 따라잡혀선 안되었다. 오솔길을 뛰고, 경사가 꽤 있는 비탈길을 뛰고, 그렇게 산 정상에 올랐다가 10분정도의 휴식을 갖고 다시 뛰어 내려가야했다. 아침마다 등산하고 등교하는 일상은 힘들었지만 당연한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여름은 해가 길어진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까지 마쳐도 해가 아직 하늘에 떠 있다. 그래서 친구들은 본인 집에서 놀다가 가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친구의 집은 참 특이한 곳에 있었다. 강을 건너 산을 한바퀴 돌고 두바퀴 돌고, 가는 길에 저만치 바다까지 보이는데도 집이 나오지 않았다. 산 중턱에 이르러서 낡은 기와집으로 지어진 집에 도착했을 땐,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친구는 걸어서 매일 이렇게 등하교를 한다며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기에, 나는 집에 가서 엄마에게 매맞을 각오를 해야 했다.      

     

가을

창문을 열어 숨을 들이쉬는 순간, 무척 쾌적하고 청량한 신선함이 느껴진다. 산의 색깔이 주황색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완벽한 빨간색으로 변하고 있다. 눈을 떠 하늘을 보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고 높은 하늘이 펼쳐져있다. 빨간색, 주황색, 파란색 색깔도 제각각인 잠자리들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가을이 본격적으로 왔음을 직감한다. 친구에게 전화하여 잠자리 잡으러 가자고 하면, 창고에 고이 모셔뒀던 잠자리채와 잠자리통을 들고 재빠르게 뛰어나온다. 이 모습을 본 동네의 아이들도 채와 통을 들고 제각각 뒤따라 나온다. “이야야압” 소리지르고 “잡았다!!”라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온다. 특히 손으로 잡는 짜릿함과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잠자리가 어딘가 앉아있으면 절대 바로 다가가선 안된다. 30초 이상 충분히 쉬는 시간을 준 후, 잠자리가 푹 쉬고 있을때쯤 꼬리가 있는 뒤로가서 날개를 재빠르게 살포시 잡아야 잡힌다. 이런 습관은 지금도 파리, 쌀나방, 모기 등 날아다니는 생물체를 잡을 때 매우 유용하게 써먹는다. 물론 이젠 그 어떤 생물체도 절대 맨 손으로는 못잡는다..   

겨울)

으슬으슬 추위가 오는듯하다. 단풍잎들이 떨어지더니 어느 순간 앙상한 가지들만 보인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일찍부터 엄마가 나를 깨운다. “밖에 눈온다~” 졸린 눈을 비비고 창문을 여는 순간 눈이 확 떠진다. 어마무시한 추위와 완벽히 하얗게 뒤덮힌 세상에 “와...!” 탄성이 절로 나온다. 꽁꽁 얼어버린 개천, 산과 들 위에 소복히 덮힌 눈. 온 세상이 티끌 한 점 없이 하얗다. 이런날은 일찌감치 먼저 밖으로 나가야한다. 흰 눈에 가장 먼저 발자국을 새기면 전교 1등도 부럽지 않은 나만의 행복과 뿌듯함이 느껴진다. 친구와 함께 눈싸움을 하고, 종이박스로 만든 썰매를 타고, 가장 깨끗해보이는 고드름을 '똑' 하고 뽑아서 먹어도 보고..

흰 눈은 내겐 없어선 안 될 가장 완벽한 겨울의 상징이었다.       


시골에서 보낸 유년시절, 자연은 내게 계절을 알려줬고, 추억을 가져다줬고, 행복을 안겨줬다. 

서울로 올라 온 지 오래 되었지만, 난 여전히 각 계절마다의 설렘을 생생히 기억한다. 

자연의 미묘한 신비로움은 어린 나의 삶을 이끌어줬다. 그 때 그 시절이 참으로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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