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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Jan 10. 2021

산이 무너지는 찰나의 순간 : 산사태 경험담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은 결국 무릎 꿇을 수 밖에 없음을..


바닷가를 왼편에 끼고 , 오른쪽에는 큰 산 하나를 끼고, 

그 사이에 차들이 오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두 줄 아스팔트 도로. 

부모님은 이 길이 예전에 산의 일부였는데,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 길을 통해 편리하고 더 빠르게 다닐 수 있는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날은 공인시험(워드프로세서 3급)을 봐야하는 중요한 날이었다.

좀 더 큰 동네로 가기 위해 작은 시골마을을 차로 달려나와 시험을 치르고 다시 돌아가는 길이었다. 

외부로 나가기 위해선 항상 산길을 넘나들어야했기에, 굽이 굽이 이어지는 산길생활은 내게 익숙했다.      


왼쪽은 푸른빛 바다, 오른쪽은 약 90도로 깎아놓은 절벽의 산. 

우린 차를 타고 그 사이의 도로를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여느때와 다름없던 그 날, 저 앞의 절벽진 산에서 갑자기 돌멩이 하나가 굴러 떨어지는게 내 눈에 포착됐다.

뒤이어 2-3개의 돌멩이가 함께 딸려 내려온다. 

그러더니 흙이 사르르륵 가볍게 내려오며 새로 자라고 있는 작고 얇은 나뭇가지들을 건드린다. 

그 나뭇가지들이 갑자기 쓸려내려오기 시작한다. 

‘어어...’ 이 소리를 입밖으로 낼 수 조차 없었다. 

집채만한 나무하나가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순식간에 스키를 타듯 아래로 쓸려내려가는데, 

주변에 있던 다른 나무들도 단체로 휘청거리며 다함께 휩쓸려 내려온다. 

바로 뒤이어 2m이상 되어보이는 큰 바위덩어리 하나가 떨어지더니, 

곧바로 다른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들도 중력의 힘을 받아 마구 아래로 떨어져내린다. 

흙, 나무, 돌덩이들이 온 힘을 다해 다함께 쏟아져내려 도로를 막아 또 다른 작은 산을 만들어버리는데 걸린 시간은 10초가 걸리지 않은듯했다. 

산사태 방지용으로 덮혀져 있던 초록색 그물 펜스는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함께 휩쓸려나갔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뜨니 , 일부 나무는 바다에 닿아 유유히 파도를 타고 휩쓸려가고 있다.      

 

너무 순식간이라 차 안에 있던 우리 가족들 중 그 누구도 “악”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모두가 얼음처럼 경직되어 순식간에 일어난 엄청난 현상을 그저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산 바로 앞에는 버스가 있었고, 그 버스 앞에는 큰 나무 하나가 사뿐히 놓여져 있었다. 

버스를 덮쳤다면 분명 형체도 없이 찌그러졌을터였다.


버스 뒤를 바짝 따라가던 우리 차도, 뒤따라 오는 차들도 모두 그 자리에서 1분정도 계속 서 있었다. 

사람이란게 다 똑같나보다. 

‘악’소리를 내뱉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찰나의 순간, 그 어떤 생각을 할 틈 없이 경직되어 버린 인체. 

10초 안에 일어나버린 ‘산사태’라는 엄청난 자연현상을 눈으로 지켜보며, 그 외의 모든것들이 정지된 느낌을 받았다.


약 1분간의 정적을 깨고, 앞의 버스는 가장 먼저 유턴하여 왔던길을 되돌아간다.

뒤이어 우리도 정신을 차리고 따라간다. 그러자 뒤이어 나머지 차들도 유턴을 하고 있다.      

‘10초만 빨랐다면..’ , ‘5초만 빨랐다면..’ 

 ‘.......’     


반대편에 차가 있었다면 분명 살아있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차로 30분만에 집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막히니, 

다른 산길로 굽이굽이 돌아돌아 거의 2시간이 걸려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맞닥뜨렸다.        

그럼에도 감사했다. 나와 우리 가족이 살아있음에..

그리고 자연은 내게 똑똑히 보여주었다. 감히 사람은 자연을 이길 수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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