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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Jan 30. 2021

빌라 안의 학교, 아파트 단지 안의 학교

살고 있는 동네에 따라 벌어지는 학창시절 일화(대한민국 부동산 열풍)

지인의 이야기다. 

서울 외곽에 전세로 신혼집을 마련했고, 아이를 낳고도 그 오피스텔 같은 아파텔에서 계속 살아왔다고 한다. 

모아둔 자산은 약 9억원.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돈, 주식으로 불린 돈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월급받아 아끼고 안써서 모은 돈이라고 한다. 

전세기간도 곧 만료겠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자녀도 있겠다, 이왕이면 교육을 위해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일대의 아파트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표정이 어두워진다.  한 달 전 봐둔 아파트의 전세가가 8억이었는데, 어제 가니 9억을 부르더란다. 이미 갖고 있는 돈으로 이젠 아파트를 살 수도 없다는걸 인지했고, 그나마 전셋집을 알아보는데 갈때마다 억대로 뛰어버리는 현실에 허탈감이 밀려온다고 한다. 


그 와중에 조심스럽게 빌라를 아예 사서 들어가는게 어떤지 물어보았다. 

아이가 없거나, 유치원생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텐데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가 있다면 생각해볼게 많다고 한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나이라고, 빌라에 사는 아이와는 놀아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둔 엄마들이 기를 쓰고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려는게 다 이유가 있단다. 

안전함, 쾌적하게 살기좋은것도 있지만 이왕이면 아이들에게 조금 더 좋은 환경과 친구들을 만들어 주고 싶은 그 마음..


빌라 안의 학교 그리고 아파트단지 안의 학교. 

두 곳의 집값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나는 이런 극과 극을 달리는 학교를 각각 다녀봤다.      

처음 서울로 이사오면서 소위 잘 사는 동네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학생들의 성적도, 생활수준도, 집값도 전국에서 거의 가장 높다는 이 곳. 

오자마자 몇 동에 사는지 물어보는 건 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몇 평에 사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질문이라는걸 오래지않아 파악하고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동네의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작은 평수에 살고 있다는건 내겐 굴욕이고 상처였다. 

부모의 재력과 부가 곧 아이들의 자존감과 자신감으로 연결된다는 말을 10대 초반의 나이에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후 빌라촌에 위치한 고등학교로 뺑뺑이 배정을 받게 되었다. 

과거 일진, 양아치 부류의 학생들로 유명세를 탔던 그 학교. 

꽤 많은 친구들이 이 학교로 배정을 받자마자, 해외로 유학을 가거나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는 등 이탈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심지어 학부모 부대가 교장실로 찾아가서 항의하는 일도 벌어졌다.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의 학교를 가야 한다는게 내겐 귀찮고 힘든 일이었다. 

입학 후 배정된 반에 들어갔는데 느낌이 쌔했다. 

반을 유난히 잘못 만난 탓도 있겠지만, 교실에서 말뚝박기를 하고 괴성을 지르는 아이들을 보며 매일같이 놀이동산으로 등교하는 느낌이었다. 

(이걸 단지 동네 수준의 차이로 언급하고 싶진 않다. 2-3학년때의 친구들은 사는곳과 관계없이 참 괜찮았으니 말이다.) 

이 때 난 아싸(아웃사이더)가 되었다. 마음에 맞는 친구도 없었고, 학교생활도 지겹고 모든게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가 비싸게 주고 산 무지개색 가위가 없어졌다고 하며 엉엉 우는 것이다. 

그 아이와 무리지어 노는 친구들 여럿은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지목하며 범인을 찾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범인만 찾고 있으니, 내가 한 행동은 아니더라도 범인 선상에 오를까봐 나 또한 은근히 두려움을 느꼈던건 사실이다. 얼마 후 한 친구가 내게 귀띔을 해줬다.

“넌 범인 목록에 없더라. 너가 잘사는 **동네에서 사니까 그런듯해. 걔네들이 넌 아예 언급도 안하던데? 그리고 범인은 수아(가명)가 지목됐대” 

기가 막혔다. 17살 고등학생들이 가위 하나로 이렇게 사람을 몰아간다는게 참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처음으로 감사함을 느꼈다. 이런 쓸데없는 곳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졸지에 도움을 줬기 때문이랄까..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지인의 고민에 충분히 공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참고)

잘 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로 무언가를 단정짓고자 쓴 글은 아닙니다. 잘 사는 동네에서도 치사하고 비겁한 일들은 일어나고 있으니요. 제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적어본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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