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역사에 만약이라는 과거를 놓는다면..
나는 다소 어린나이에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으로 입사했다.
취준생 시절도 없었고,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도 거의 없이 말 그대로 한방에 합격했다.
당시 이보다 더 좋은 선택지는 없었다. 누구나 원하는, 누구나 바라는 그 길로 사회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가족뿐 아니라 친척들에게도 나의 취업은 경사였다. 합격과 동시에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자랑하고 싶은 손녀이자 딸이 되어버렸다. 자식이 성공하면 부모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소리가 그런것이라는걸.. 나는 그렇게 효도라는 걸 행하게 되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배우는 사무직 업무에 익숙치 않아 엄청난 야근이 행해졌다.
주 퇴근시간은 8-9시로 업무시간은 12시간이 기본이었다.
약 2-3년동안 부족했던만큼 나만의 인생이 없이 회사에 몰두하는 삶이 지속되었다.
실수도 많았고,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나보다 5-6살 많은 선배들 사이에서 지내야하는 인간관계는 또 왜 이리 힘든지.. 그래도 그 힘든 생활을 이겨냈고, ‘독하다’는 말을 들으며 겪어냈다.
나이어린 내게 행했던 선배들의 행동들 중 상당부분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행동들이 꽤 있다.
예를 들면 평일 당직날 당직순번이었던 옆자리 주임님이 갑자기 가방을 챙긴다.
“주임님, 오늘 당직 아니세요?”
“응? 근데 나 약속있는데..?”
“아 저도 당직 대신해드리고 싶은데, 곧 일 끝내고 약속가야해서요..”
“나도 약속 있다니까! 그럼 난 어떡해? 나 지금 약속 가야해”
(후다닥 달려나가며) “오늘 당직 잘 하고!! 나 먼저 간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 분을 보며
정녕 가방끈 긴 고학력자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이성적인 행동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재밌고 좋았던 시간도 있었지만 불합리하고 부당했던 사건도 많았다.
그런 힘든 시간을 버텨낸건 지금까지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사람은 상대적인 동물이 분명하다.
‘정말로 힘들었던 그 때보다 지금이 낫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더 나아질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이유였다.
“거의 10년차면 돈 꽤 많이 모았겠네요..?” 누군가는 묻는다.
그러면 답한다.
“뭐.. 순수히 모아둔 돈을 계산해보면 한.. 1억 3-4천 정도 될듯해요.”
부모님 집에서 살아왔으니 돈을 꽤 쓰면서도 이렇게 모았다. (돈이 줄줄 샜다는 표현이 맞겠다.)
친구들은 말한다.
“넌 성공한거야. 회사도 대기업이고, 복지도 좋고,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일하다니 대단해. 일하는 건물도 정말 으리으리하다..! ”
그렇다면 나는 성공한 삶인가..? 내게 되묻는다.
사무직 업무를 하다보면 대체될 수 없는 ‘나’가 아닌 대체되기 쉬운 ‘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일을 하다 보면 점점 ‘나’란 존재를 잊고 하나의 부품이 되어 기계적으로 일하는 내가 보인다.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여기에 쏟고 있는 나를 보면 약간의 자괴감이 든다.
유일한 낙이었던 해외여행도 어려워진 요즘 더욱이 이런 고민이 나를 에워싼다.
“정녕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가. 원하는 경제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에 언제쯤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중 문득 이런 가정을 해보게 되었다.
역사에 만약은 없듯이 나의 역사에도 만약은 없겠으나 입사 당시로 시간을 되돌려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게 되었다.
당시 한달 최저시급은 130만원 정도로 기억한다.
난 140만원을 받고 소기업 경매 혹은 부동산 사무소에 입사한다.
직원은 6명 미만이며, 사장은 자수성가로 돈을 벌고 있는 부동산 경매, 유통 등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하는 일은 사장을 대신하여 법원에서 경매대리인이 되거나 사장과 유통거래처에서 미팅을 하는일, 일당백이기에 업무는 빡세고 야근도 좀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업무에 성취감도 있고, 앞으로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들인듯 하고, 회사를 그만두고도 돈을 벌기에 좋은 고급 정보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사장이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돈을 버는 방법을 보게 되었다.
적은 돈으로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하고 투자처를 발굴하고 돈을 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적은 월급이지만 알뜰히 모으고 대출을 받아 내 앞으로의 내 삶에도 적용해보기로 다짐했다.
무수히 봐 온 부동산 경매,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유통망, 무자본으로 가능한 돈을 버는 방법들..
그럼에도 외부 사람들의 시선은 대기업에 가지 못해 중소기업을 다니는 직원일뿐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름없는 회사에 다니는 난 괜히 위축된다.
사람은 갖지 못한 것을 쳐다보고 비교하게 된다고.. 그들의 복지를 보면 참 부러워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본다.
나의 역사에 들어선 만약이라는 과거가 지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었다면.. 그랬다면..
지금쯤은 경제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에 조금 더 빨리 다가서고 있지는 않을까.
여기까지 나만의 가정법이었다.
이런 시야를 배울 수 있는 스타트업 소기업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연봉과 복지 등 많은것을 포기하고 갈 마음은 있다. 이런 회사에서 성장해온 사람들도 분명히 있기에 대기업과 소기업의 편가르기는 참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직업에 귀천이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난 어떤 자리에 있었든 꾸준하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걸 자부하기에..
앞으로는 더 먼 미래를 바라보고, 효율적으로 그 방향을 잘 결정해야겠다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