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살던 A는 서울 대기업에 취직 후 자취를 시작했다.
첫 시작은 월세 60만원이었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생활비(관리비, 식비, 의류비, 교통비, 휴대폰비 등)가 85만원이니,
한 달에 145만원은 그대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대기업이라 많이 벌지 않냐고 누군가는 물어보지만 전혀 모르는 소리다.
고정비 145만원은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월급쟁이 직장인에게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15만원씩 이자를 내며 월세대신 전세로 살기로 했다.
한달 생활비는 85만원에서 살짝 여유를두고 110만원으로 늘렸고, 125만원 정도라면 자취하는 것 치고는 꽤 괜찮은 지출이라 여겼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B는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어 식비, 주거에는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적은 월급으로 돈 모으기에 한계가 있다는걸 깨달은 B는 재테크에 관심을 두고 목돈 만들기에 주력했다.
주식, 온라인 PDF책 출간, 블로그, 유튜브를 하며 한달에 5-10만원씩 다양한 수입원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만이 생존방법이라 느꼈다. B의 한 달 생활비는 85만원이다.
A와 B는 한 달 월급 약 100만원 정도의 차이가 난다.
A가 300만원 B가 200만원이라고 했을 때, 매달 A에게는 175만원(300만원-125만원)이 남고, B에게는 115만원(200만원-85만원)이 남는다.
만약 A가 월세(60만원)로 살았다면 돈이라는 측면에서는 대기업과 무관하게 A와 B는 차이가 없거나 B의 월급이 더 많이 남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둘은 적금을 붓고 있다. A는 175만원(300만원-125만원) 중 60만원을 제외 후 115만원을 저축했고, B는 남는돈 115만원을 전액 붓게 된다.
회사 입사 3년차가 되었다.
(대기업 다니는) A는 차를 사고 싶었다. 본가의 지방에 내려갈 때, 가족들이 올라올때마다 드는 유류비가 아깝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차를 갖는건 그의 목표 중 하나였다. 3년간 60만원의 돈을 차곡차곡 모았고 약 2100만원을 모았을 때, 할부 1200만원을 끼고 중형차를 구입했다. 앞으로 10년 이상 이 차를 타고 다니며 무사고의 목표를 세웠다. 주말마다 차를 끌고 외곽에 나가는건 더할나위없는 인생의 행복이었다. 그 무엇과도 결코 바꿀 수 없었다.
(중소기업 다니는) B 또한 차를 사고싶었으나 월급으로는 어려우니 부모님 차를 빌려 타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대신 B는 부동산에 관심이 생겼다. 서울 집값이 한없이 오르는걸 보니 연고가 없는 지방에 살 수는 없기에 하루빨리 서울에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B는 어린시절부터 입사 후 모아둔 돈과 부모님으로부터 빌린 돈, 은행 대출 그리고 전세세입자를 받아 아파텔(아파트+오피스텔)을 구입했다. 입지로 보았을 때, 이 아파텔은 훗날 가격이 오를것이라 확신했고 언젠가 돈이 마련되면 직접 들어가서 살 생각도 있었다.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이 돈을 많이 버는걸 뜻한다면,
차를 구입한 A와 주택을 구입한 B는 점점 자산에 격차가 거의 없어지는게 보인다.
만약 주택의 가격이 오른다면, 차를 산 A보다 B의 자산이 더 높게 평가될 수도 있을것이다.
어느덧 회사 입사 5년차가 되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A는 입사전까지만해도 인적성시험 준비부터 자격증취득까지 열심히 살아왔고, 입사 후 일하고 야근하느라 무척 바빴다. 2년차부터 업무도 어느정도 안정이 되자 동료들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자정이 되어 집에 들어가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매일같이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지루한 일상에,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술은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B는 입사때부터 지금껏 칼퇴근이 보장되고, 업무량도 많지 않은게 참 행운이었다. 작은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배우는것도 많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작은 회사라 못볼 일도 많이 겪었다. 특히 입사 후 1년차에 정규직원 3명이 해고되는걸 목격했다. 1년간 지켜본 그녀들은 매일같이 출근 후 1시간동안 커피를 마시러 가고, 업무도 절대 받으려하지 않고, 사내정치를 벌이는 등 10년차 직원의 행실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해고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그 또한 똑같은 상황을 겪게 될 수 있을거라는 고용불안정성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인생은 능력과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걸 절실히 느끼며 퇴근 후 매일같이 자기계발에 힘썼다. 2-3년 후 연봉을 크게 올려 이직을 해야겠다는 목표 또한 생겼다.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이 능력을 뜻한다면,
A와 B중 누구의 능력이 우수할까.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여전히 대기업 다니는 A를 우선으로 생각하지만, 회사라는 타이틀을 뒤로하면 중소기업에 다니는 B의 능력이 시간이 갈수록 더 우수해지고 있다.
요즘 코로나 이후 대기업에서도 희망퇴직을 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A는 문득 절망적인 생각이 몰려온다.
‘내가 이제 이직을 할 수 있을까’ , ‘입사 후 난 일 외에 무얼하며 살아왔는가’
의외로 대기업에서 나이가 40대에 이른 동료들 중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다.
철없는 대기업 직원 A를 풍자하려고 쓴 글은 아니다.
실제로 B의 케이스와 비교하지 않고 A의 사례만 읽어본다면 무엇이 잘못된건지 거의 느낄 수 없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음에도 더 이상 자기발전과 시간관리에 무력해버린 사람이 있는가하면, 중소기업에 다녀도 눈이 트여 삶을 알차게 꾸려나가는 사람도 있다.
이 사회에서 대기업 입사가 대학시절의 노력을 평가받는 잣대일 수 밖에 없다면,
회사 입사 이후에 어떻게 살아왔느냐도 평가받을 수 있어야한다.
이 글을 통해 대기업, 중소기업 중 어디를 다니느냐로 사람을 평가하고 능력과 부의 기준을 나눠버리는 일부 사람들과 이 사회가 분명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