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 파파라치

bgm.악동클럽-착각

by 맥켈란


네이버 검색어 눌러보기로 하루가 시작된다. 깨자마자 반쪽 눈만 겨우 뜬 채 가장 먼저 하는 짓거리다. 2008년 5월 15일 아침도 컨트롤 시 컨트롤 브이. 손예진 파파라치. 실시간 검색어 가장 위에 오른 키워드다. 꾸욱. 검색어를 눌러보니 전날 밤 방송된 예능프로그램에서 호동이 무르팍 도사에게 과거 파파라치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는 뉴스들이 빼곡했다.

“매일 집 앞에 두 남녀가 타고 있는 검은색 자동차가 늘 주차되어있었어요. 어느 날 친언니가 슈퍼마켓에 가려고 외출했는데 차에서 남자가 내리더니 언니를 뒤쫓아가며 찍었죠. 경찰에 신고했었는데...” 해당 영상을 찾아보니 예진언니가 조그만 입술로 조근조근 말했다.


응? 기분이 싸했다. 차 안에 탄 여자가 바로 저니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한 연예매체 신입 기자로 일했던 시절이다. 한국판 ‘더 선’(유명한 파파라치 매체인 영국 타플로이드)이 되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회사를 다닐 땐 잠복근무는 일상이었다.

오전에는 기사를 쓰고 오후에는 사진 담당 선배 기자와 함께 강렬하게 선팅돼있는 검은색 세단에 몸을 구겨 넣고 강남일대로 부앙~ 압구정을 시작으로 논현동 역삼동 삼성동을 돌았다. 마지막 지점인 삼성동에는 일명 A급이라고 불리는 연예인들이 많이 살았다.

호동오빠에게 밝힌 예진언니의 말들은 모두 진실일까?

사실은 말입니다... 언니와 나는 조금 다른 기억이다. 언니 집 앞에 주차하고 대기하고 있었던 건 팩트다. 그렇지만 당시 우린 얼마 전에 큰 일 치른 혜교언니를 주시하고 있었다.(예진언니~ 아쉽지만 언니가 타깃이 아니었어요.) 혜교언닌 예진언니와 같은 빌라 1층에 살고 있었다.



지독히도 추운 겨울이었다. 커다란 파카에 파묻혀 냉기가 도는 차 안에서 팔짱을 낀 채 앞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혜교언니네 집 문이 열리더니 예진언니가 또 다른 언니랑 대문을 나섰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는 선배가 카메라를 메고 뒤를 쫓았다. 기분이 좀 싸하긴 했다.

듣고 있던 유행가 한곡이 끝났을 무렵, 차를 지나 냅다 도망치는 선배가 눈에 들어왔다. 뒤를 이어 이름 모를 언니가 달려가더니 그 뒤를 예진언니가 숨을 헐떡이며 쫓았다. X 됐다. 추위 때문일까. 머리는 금방 차가워졌다. 차 안에 있는 노트북 카메라 녹음기 등 취재 관련 장비들을 의자 밑으로 숨기고 내 몸도 최대한 바닥으로 구겼다. 당시 면허가 없어서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





똑똑. 시체가 되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숨 죽이고 있었는데 누군가 창문을 두들겼다. 창문을 반쯤 열고 담담히 목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세요?” 갑자기 예진언니 얼굴이 눈 앞까지 훅 들어왔다. 예쁘다. 역시 배우는 배우구나. 민낯인데 하얗게 빛이 났고 이목구비가 비너스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예진언니가 앙칼지게 물었다. “여기서 뭐하세요?”

다시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남자 친구랑 데이트 중인데요?” 좋았어! 자연스러웠어! 오글거렸지만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그러면서 더 자연~스럽게 능청을 떨어봤다. “손예진 씨 맞으시죠? 클래식부터 팬이에요.” 언니 얼굴이 알쏭달쏭해지더니, 옆에 있던 이름 모를 언니 귀에 대고 소곤대는데, 다 들렸다. “기자 아닌가 봐...”(지금 내 연기 통한 거야?)

이름 모를 언니가 신분증을 보여달랜다. “그건 좀 상식에 벗어나는 일인 것 같은데요? 그래도 당당하니 보여드릴게요.” 카리스마를 덤으로 얹어 연기를 이어갔다. 당시 내 나이 23세. 선배와 나는 대학교 CC커플이라고 뻥쳤다. 예진언니는 집으로 돌아갔고 의심병이 깊은 이름 모를 언닌 차 앞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손가락은 바빠졌다. 혼자 ‘톡’ 낀 야속한 선배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상황 설명 블라블라) 우째요/ 너 운전 못하지?/... / 일단 갈게 기다려’ 부아아아아앙~끽. 오토바이 한 대가 차 앞을 가로막았다. 백퍼 예진언니 매니저. 예진언니를 지키려는 두 남녀는 경찰까지 불렀고 선배는 멋지게 컴백했다. 그다음은 노코멘트다. 우리와 경찰이 나눈 아름다운 이야기쯤으로 해두자.

손예진 파파라치가 검색어로 링크된 날. 오랜만에 선배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우리의 생각은 통했다. 조용히 있자. 암튼 파파라치 생활을 하면서 가장 생생한 기억이 있는 연예인은 예진언니다. 언니~잘 지내고 계시죠? 정말 예뻤어요. 클래식부터 팬인 건 팩트예요. 근데 우린 정말 언니 안 쫓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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