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 문뜩 떠오른 사건

bgm. 술이 문제야-장혜진, 윤민수

by 맥켈란

구름 몇 점 없는 높고 파란 하늘이 덮인 가을이 한창이다. 거실 마루 바닥에 벌렁 누워서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 비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스페인 톨레도 여행 에피소드가 떠올라한 손바닥으로 두 눈을 가렸다. 피식. 나도 참.

3월 초. 아직 봄이 저만치 있는데, 톨레도 햇살은 오빠랑 닮아 있었다. 참 밝고 따뜻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거쳐 도착한 작은 마을은 동화처럼 예뻤다. 아이보리를 입은 집들이 붉은색 지붕을 얹고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두 눈에 담고 있자니, 빨강머리 앤처럼 동네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싶어 진다. 전력질주는 하지 못했지만, 오빠랑 깍짓손을 잡고 총총걸음으로 언덕을 오르고 내리며 동네 구경을 실컷 했다.

그래서인지 배가 몹시 고파졌다. 우리는 구글 맵을 따라 미리 알아봤던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리브. 귀여운 이름을 가진 식당이다. 아! 아담한 하얀 문을 밀고 들어가니, 작은 탄성이 터졌다. 열몇 평쯤 되는 작은 공간은 조그만 동네 미술관처럼 꾸며져 있다. 엔틱 한 인테리어 제품들과 벽에 걸린 감각적인 미술 작품들이 퍽 인상적이고 참 근사했다.

“안녕하세요”
뭔가에 홀릴 거처럼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는데, 들려온 한국말. 고개를 돌려보니, 빵모자를 비스듬히 쓴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마음이 맞는 한국인 예술가 6인 친구들이 톨레도로 날아와, 띵가띵가 요식업을 하고 있다는 세상 플렉스 한 사연을 들려줬다. 아이코. 내가 플렉스 해버렸지 뭐야.

바다 건너 타지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을 만나는 일은 아주 신이 나는 일이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몇몇 친구들을 사귀며 세상을 나눴다. 올리브 아저씨에게도 들뜬 마음을 자꾸 고백하며, 맛있는 디시를 씹고 와인을 입에 털었다. 그렇게 세병을 비우고 아름다운 사연은 사건으로 바뀐다.

“또 만나요!”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다시 툴레도 동네 구경하러 밖으로 나왔다. 헤헤 자꾸 빙구웃음이 새어 나왔고, 뜨거운 햇살이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세상은 깜깜해진다. 붉은빛 햇살이 아니라 새하얗게 찌르는 조명에 한쪽 눈을 찌푸리며 떴다. 하얀 가운을 입은 백인 언니들이 내 옷을 벗기고 있었다. 아. 좆됐다고 생각했다.

“웨얼 이즈 마이 허즈밴드?”
모기 같은 목소리를 내자 금발 언니들은 손동작을 멈추고, 내 얼굴을 신기한 듯 들여다봤다. 그러고선, 자기들끼리 눈으로 대화를 하며 웃었다. 그중 한 명이 오빠를 데리고 왔다. 벌건 토끼눈을 뜨고 하얗게 질린 얼굴. (지금 생각해도 웃기네.) 순간 취기가 돌은 철부지 아내는 길바닥에 철퍼덕 앉은뱅이가 됐고. 나를 들쳐 엎고 기차역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여경이 오빠를 의심했단다. 납치범 아니냐며. 그렇게 정신 나간 내 몸뚱이는 응급차에 실려 병원까지 갔던 것이, 것이, 것이었돠.

다행인 건지 아닌 건지. 병원 관계자들은 일 푼도 받지 않고 우리를 놓아주었다. 함박미소를 지으며 병원 입구까지 데려다줬다. 그들도 웃겼던... 다리 풀린 오빠와 함께 톨레도를 빠져나왔던 웃픈 이야기. 오빠. 그래도 추억이었지? 나랑 살면 재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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