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고 신속하게 책 택배 상자 없애기

북 코디네이터의 투덜투덜 책사랑 이야기

by 이화정

9/2

9/9

9/14

9/15

9/17

9/20

9/27


이 숫자로 말할 것 같으면 한 온라인 서점의 주문 날짜 되시겠다. 한 권씩만 주문한 것인가? 물론 아니다. 무려 17권.

여기서만 책을 샀느냐? 그럴 리가.

9월은 독립 서점 세 군데를 갈 기회가 있었고 그곳에서 산 책만 해도 얼추 10권이다. 그중에는 무려 5만 원짜리 미술사 책도 있다. 주문해 놓고 아직 찾아오지 못한 책도 있는 건 안 비밀.

선물한 일이 있으면 거의 책으로 하는 것도 한몫한다. 마치 책 사는 게 장보는 것처럼 일상이 되었다.

책방에서 강의를 하면 고마워서 책을 왕창 사고, 멋진 책을 소개해 주시면 넙죽 사고, 신기한 책을 발견하면 신나서 산다.

아이들 어릴 적 독서지도 교사로 돈을 벌 때도 거의 책 사는데 투자를 했다. 신간들을 사서 아이들 읽히는 재미에 아낌없이 책을 사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독서 모임에 참고할 책이야! 공부하는 데 필요하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어떻게 안 사? 그림책과 시집은 노후준비의 필수라고!....”

별별 이유를 들어 큰소리 뻥뻥 치며 사들인다.

내가 쓸 만한 범위의 생활비로 사든, 내가 번 돈으로 사든 별로 간섭을 안 하고, 잔소리도 없는 편이지만 남편 눈치가 가끔 보일 때가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택배 상자가 들어올 때가 그렇고,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몇 배는 빠른 게 눈에 뻔히 보일 때가 그렇다. 순식간에 책 무더기가 쌓일 때면 긴급 조치에 들어간다.


1. 은밀하고 신속하게 택배 상자를 처리하라.

얼른 책을 꺼내고 베란다 재활용 수거함으로 가져가지 않고 바로 집 밖으로 배출!

아! 요즘은 가끔 현장에서 걸린다!

원하지도 않는 총알배송 시스템 때문이다. 오전에 주문한 책이 오후면 도착하는 과잉 서비스가 문제. 밥하느라 분주해서 미처 택배 상자를 들이지 못한 경우 퇴근한 남편이 책 상자를 들고 들어올 때...... “어제도 오지 않았나? 그만 좀 사지!!”


으으으 이 눔의 당일배송


2. 비밀리에 새 책을 숨겨놓을 것.

무더기는 스스로 찔릴 때가 많다. 언제 읽을지도 모르면서 사고, 읽지 못한 채 몇 달 혹은 해를 넘긴 채 대기 중인 책이 줄줄이 있어도 또 욕심껏 사대는, 몹쓸 책사재기. 가끔은 나도 내가 징그럽다. 언젠가 권수를 세어보았더니 눈에 띄는 새 책만 30권이 넘었다.

한숨 푹푹 쉬며 당분간은 책을 사지 않겠노라 다짐을 하건만 다음날이면 또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 나타나니 원....


몇 달 전 책장 정리를 대대적으로 한 적이 있다. 다 읽은 책들 중 다시 들춰볼 확률이 낮은 책은 아들방의 큰 책장으로 옮기고, 중고 서점에 내놓을 책들도 추렸다. 책장 한 칸은 새 책만 꽂아두었다. 그때도 다이어리에 읽을 순서를 대략 정해 적어두기까지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리가 없어 맨 위 비어있는 자리에 책을 쌓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자리마저도 부족하다.


어떡하지..... 천장에 곧 닿겠어.

그 자리가 새 책 자리인 걸 남편도 뻔히 아는지라 최근에 산 책은 맨 아래 칸에 몰래 꽂아두거나 낡은 책들 사이에 감쪽같이 숨기기도 한다.


아니, 내가 왜 이래야 하는 거지? 이게 무슨 큰 잘못이라고? 내 참.

남편은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뭘 어쨌다고 ...)

아마 내 안의 불편함에 지레 짜증을 내는 것일 수도. 왜 책 욕심은 하늘을 찌르는지. 쌓인 책들을 보며 뿌듯해하는 건 잠시고 볼 때마다 저걸 언제 읽나 한숨을 푹푹 쉰다.


9월 카드값이 전면에 등장하는 앱을 켤 때마다 화들짝 놀라 외면하기를 여러 번.


10월에는 책 좀 그만 사자?

그런데 어쩌랴. 3일밖에 안 지난 지금, 난 동네 책방에 덜컥 책 4권을 주문해 놓았다.

오늘은 읽던 책에 언급된 소설책을 찾아보다가 절판된 책이라 중고 서점을 뒤지기 시작했고, 요즘 한참 꽂혀 있는 ‘늑대’ 관련 책을 검색하다가 또 지르고 말았다.

주문 목록을 보다 에휴, 또 머리를 쥐어박고 싶다.

10/3 주문 목록

개, 늑대, 그리고 하느님

긴 여행의 도중

길 잃은 아기 늑대

음악을 사랑한 늑대

울지 않는 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