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은 눈물집인가

북 코디네이터의 투덜투덜 책사랑 이야기

by 이화정


10월의 창밖은 언뜻 한여름 같아 보인다. 상수리나무 가지에 빽빽하게 매달려 있던 초록 잎들을 아침마다 오래 바라본다. 생기를 잃어가는 모습이 짠하고 아쉬워서다. 자세히 보면 벌써 누렇게 죽은 잎사귀들도 눈에 띈다. 마음 한 구석이 바스락거리는 것만 같다.


여름에 읽기 시작한 천양희 시집 <지독히 다행한>은 가을에 접어들면서 더 자주 들춰보게 된다.

『다시 쓰는 사계(四季)』라는 시를 읽다가 가슴이 내려앉았다.


‘초록이 조금씩 지쳐가더니/ 바람의 기색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시를 읽을 때면 어떤 사람의 표정이 떠오를 때가 있다. 스쳐가는 얼굴을 가만히 불러 시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리 좀 와 봐요. 이 시 어때요? 딱 당신 위한 시 같지 않아요?

시인은 깊어가는 ‘산그늘’에 기대어 혹독했던 여름을 지나온 우리를 위로하듯 ‘수고로운 인생’이라 쓰고 지우고, ‘정답 없는 질문’에 안간힘을 쓰기도 하는 모습을 담담히 그려낸다.

시를 읽어가는 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던 그때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한참을 눈을 깜박이던 그 카페,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마지막 연을 읽고 나서 결국 마스크가 젖도록 눈물을 흘리던 날이.


노트북을 마주하고 앉아 서로 웃으며 수다를 떨고, 다른 사람이 말할 때면 늘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얼굴. 가슴이 찌르르 아팠다. 시의 마지막 구절을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사는 일이

거두는 일보다

지독히 다행한 계절입니다


‘지독히 다행한’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의 조합이 좋아하는 한 사람의 얼굴이 겹쳐지는 순간 온기를 입고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깊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시집 맨 뒷장 짙은 초록색 면지에. 좋아하는 연필을 쥐고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빼곡하게.


에밀리 디킨슨의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를 펼치면 못난 점만 확대경을 들고 들여다보는 버릇이 나랑 비슷한 A가 떠오르고, 김용택 시집 <울고 들어 온 너에게>를 읽다 보면 해마다 깊은 상실감에 가슴앓이를 하는 B의 얼굴을 시인처럼 감싸주고 싶어 진다.

추운 겨울 만날 기회가 생기면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려 따뜻해진 손으로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는 시인처럼 두 손을 싹싹 오래 비벼 열을 낸 후 두 볼을 살며시 어루만져 주고 싶은 마음.


시집을 펼칠 때마다 떠오르는 이들이 점점 많아져서 괴롭다.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핑 돌고, 먹고 사느라 바빠 오랜 시간 투병 생활을 한 지도 몰랐던 친구 얼굴이 떠오르면 미안해서 울고 싶어 진다. 엄마 시가 나오면 아무 이유 없이 눈물 툭, 동시를 읽으면서도 감동에 겨워 주르륵.


시집은 시만 모아놓은 게 아니었어. 나에게 시집은 눈물집인 게야. 이런 몹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