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이자 소설가, 시인이기도 한 데버라 리비 <살림 비용>을 찰옥수수 알갱이를 꼭꼭 씹듯 읽었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던 책이다. 원제를 보고서야 삶의 비용에 대한, 어떤 대가에 대한 이야기임을 눈치챘다.
불확실하던 그 시절, 내가 불확실에 내재된 불안을,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음에서 오는 불안감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준 얼마 안 되는 활동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데버라 리비 <살림 비용> 플레이타임(41)
책 곳곳에 글쓰기에 대한 매혹적인 문장이 나타날 때마다 가슴이 요동쳤다.
느끼는 대로 삶을 말하고 표현하는 것도 하나의 자유인데 우리는 대개 이 자유를 택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날 내가 엿본 여자의 내면은 하고 싶은 말들,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불가사의하게 다가오는 말들로 살아 생동하고 있었다. (12)
다이어리를 펼쳐 퍼뜩 떠오른 생각을 적었다.
'책을 읽다 소름. 이런 문장에 미쳐 밥하러 가기 싫은 날'
'책에 미친 거 아냐?'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는 이 말에 반박하고 싶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 보았다.
'2. 어떤 일에 지나칠 정도로 열중하다'
그래 이거지!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
데버라 리비는 이혼 직후, 해가 환한 날들도 자신의 집안은 밤낮으로 비가 오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내 새로 시작한 삶에 ‘색깔을 입히기로 결심’하고는 침실을 온통 노란색으로 칠하고, 오렌지색 커튼을 달고, 분홍빛으로 물들인 닭털을 붙여 만든 아프리카산 방패를 벽에 건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감정들에 선전 포고하듯 ‘지난 삶의 울분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방패가 필요’했다고 썼다.
'모성이라는 버거운 짐', '남자들이 쓰고 여자들이 연기'해야 했던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참으로 호된 대가를 치른다. 제 안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두 딸을 건사하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밀려들었다.
데버라 리비는 예순 살의 영국 조각가 바버라 헵워스, 아흔 살의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가 조각용 도구와 철 연장을 들고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는 사진을 냉장고에 붙여 놓고 볼 때마다 그들의 특유한 주의력이 이들 각자에게 형량할 길 없는 아름다움을 주고, 그런 아름다움만이 자신에게 중요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불확실에 내재된 불안'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준 활동 중 하나가 글쓰기라고 밝힌다.
과거의 상처, 실수, 회한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갉아먹을 때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글쓰기가 무너진 자아를 어떻게 돌보며 지탱해 주는지, 어떤 방식으로 삶을 다시 일구는 도구로 쓰이는지를 보여준다.
생계형 작가로서 열악한 작업실에서 글을 써야 할 때도 주변의 사물들에 깃든 사연들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되살리고, 다람쥐와 교감을 나누는 기쁨을 시적인 언어로 묘사하고, 정원사가 식물을 대하는 태도, 세심한 행동을 관찰하며 느낀 것을 기록한다.
데버라 리비는 ‘모든 글쓰기는 보고 듣고 세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을 보다 보면 생활밀착형 글쓰기는 이런 게 아닐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는 불안, 억압, 자유, 여성성 같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일상 속의 말, 이웃과의 대화, 주변 사람들의 행동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책을 보는 내내 나의 상황을 대입해 보기도 하고, 선택의 기로에 서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지점이 많았던 것도 작가의 필력 덕분이다.
데버라 리비는 ‘비용’에 대해 세 번 언급한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자유를 쟁취하고자 분투하는 사람 치고 그에 수반하는 비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26)
내 배역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중단시키는 데는 어떤 비용이 따르려나? (77)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은 삶의 비용으로 만든 글이며 디지털 잉크로 만들어졌다. (161)
이제 나의 ‘비용’에 대해 생각할 차례다. 나는 어떤 비용을 치르며 여기까지 왔는가? 과연 그 비용을 기꺼이 치를만한 가치 있는 것에 지불했는가?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일구느라 쏟아부은 시간과 애정과 노력과 기쁨과 보람과 눈물..... 이 복합적인 감정과 다양한 의미들을 ‘비용’이라는 말로 바꾸기에 무리는 없는가?
내가 하기 싫은 일(진짜 살림)을 하지 않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을 얼추 계산해 보았다. 그 비용을 감당할 능력도 없지만 돈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격이 되지는 않을까?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는 여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 ‘나이 든 여자’에 대한 달갑지 않은 시선,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중단시키는데 따르는 비용은 무엇일까?
<살림 비용>은 데버라 리비의 삶의 비용으로 만든 글이며 디지털 잉크로 만들어졌다는데, 내식으로 표현한다면 나는 어떻게 써야 할까?
인생을 내가 느끼는 대로 글로 풀어낼 만치 자유로워지더라도, 그것도 결국엔 내 존재가 더 현실적이고 더 실제적인 것이라 느끼기 위해서려나? 내가 손에 쥐려는 게 뭘까? 더 많은 현실을 원하는 게 아님은 분명했다. ‘그녀’를 위해 여태 쓰여 온 주연 격 여성 인물을 쓰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아직 쓰이지 않은 주연급 여성 캐릭터에 더 관심이 갔다. (150)
나는 어떤 비용을 치르고 있나 돌아보는 과정은 씁쓸했고, 앞으로도 수없이 들어갈 삶의 비용, 제대로 나답게 살기 위해 마련할 비용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버겁다. 그럼에도 내 삶의 주연으로 살아갈 결심을 한다.
잔소리 말고, 징징대지도 말고, 머리 굴리며 쓰는 글 말고 산대로 정직하게써!성실하게, 열심히.
돈도 열심히 벌자?내가 나를 책임질수 있도록.
삶으로 체화된 말과 글을 만나면 소름이 돋는다. 이런 문장에 미쳐 밥하러 가기 싫은 날, 나는 미숙한 나의 언어를 살 찌우기 책을 덮고 부엌을 향한다. 아직은 내가 무수히 치러야 할 삶의 비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