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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Jan 16. 2016

나무가 가르쳐 주는 것들

유연한 사고

메타쉐콰이아 나무를 좋아한다.

특히 서대문구 안산 자락에 위치한 메타쉐콰이아 숲길을 계절이 바뀔 때면 꼭 찾아가는 편이다.

작년 봄에 찍은 이 사진은 아끼는 사진 중 하나이다.

나무 의자에 앉아 한껏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바라봤었다. 눈에 들어온 여린 가지들을 한참 보고 있다가 문득  '유연한 사고' 에 대해 생각했다.

봄바람이 살살 불고 있었는데 여린 가지들은 미세한 흔들림에 편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간혹 바람이 휘이 불면 춤을 추듯이 일제히 바람의 방향에 따라 몸을 젖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봄바람과 한 몸이 된 듯 조용히 흔들거렸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굵고 튼실한 나무 기둥 아래 뿌리가 있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 유연한 흔들림 속에 깃든 평화로움에 고개가 아픈 줄도 모르고 쳐다봤었다.

생명력이 묻어나는 봄바람에는 함께 흥겹게 살랑거리는 이 가지들이

세찬 바람이나 폭풍이 다가오면 힘을 빼고 온전히 제 몸을 뿌리에 맡기고 그 때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나무는 그지없이 평화롭고 안온한 상태이든 혹독한 시련 앞에서든,  그저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고함치거나 저항하지도 않고 묵묵히 삶을 견딘다.


굵은 나무둥치 위로 뻗어나가며 올라갈수록 가녀린 가지들을 보고 있노라면 뿌리에 대한 신뢰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유연한 사고는 삶 자체에 대한 경의에 바탕을 두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굳건할 때 가능하다.


그래, 그럴 수도 있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에 베인 자리처럼 보이지 않는 쓰라림을 주는 사람일지라도 다시 만나고,

아주 오랜 시간 공들인 일들이 실패감으로 다가와도 다시 시작하는 것도

그 무언가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무너진 마음의 자리에서, 미친듯이 흔들리는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힘을 잔뜩 주느라 경직된 몸과 마음이 저 나무 같았으면 좋겠다.

유연하게 살랑살랑,

그래, 그래, 어쩌겠어 사는 게 다 그렇지,

사람 마음이 어디 마음대로 되나 다 그런거지,

흔들흔들, 좋을 때도 있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고,

그래, 그렇구나,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  안에 소용돌이 치는 미숙하고 설익은 말들을 내뱉고 싶은 욕망과, 삼키려는 의지 사이에서 오늘도 방황하는 나는 오래 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


글을 쓰다말고, 사전에 나온 뜻을 옮겨 적으면서 감탄했다. 그리고 정말 후련해졌다.

갑자기 나무가 건네는 말이 듣고 싶어졌다. 나무를 보러 산에  가야겠다.

이제 곧 나무는 헐벗은 몸에 눈부신 생명을 걸치고 더 친근하고 은근하게 내게 말할 것이다.

올 해는 또 어떤 말을 건넬 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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