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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Jan 18. 2016

책이 내게 건넨 말

기록하는 이유


"이 서두가 곧 끝나고 나를 제거할 선언이 시작되기를 고대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항상 그랬듯이 앞으로 나아가기가 두렵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여기에서 옮겨가는 것, 나를 발견하고 잃어버리는 것, 사라졌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방인이었다가 항상 그래왔듯이 조금씩 조금씩, 다른 장소에서, 내 생각엔 내가 항상 있어왔던 곳, 하지만 내가 전혀 모른다고 해야 할 곳에서, 볼 수도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이,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이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언가를 알아가게 될 것이며, 마침내 그곳이 항상 똑같은 장소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 나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나를 원하지 않는 바로 그 장소, 내가 원하는 것 같지만 원하지 않는 그곳, 나를 뱉어내거나 삼켜버릴 그곳, 어느 쪽이든 간에 나는 전혀 알 길이 없지만, 어쩌면 한때 내가 배회했던 내 아득한 머리통 속에 지나지 않을 그곳에 나는 이제 고정되어, 극히 작은 존재로 전락하여, 혹은 벽을 받친 채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내 머리로, 내 양손으로, 내 두 발로, 내 등으로. 그러면서 줄곧 내 오래된 이야기들, 내 해묵은 이야기를 마치 이번이 처음인 것처럼 중얼거리고 있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또다시 두려워지는 것은, 내 말들이 나에게, 나의 은신처에 어떤 짓을 할 것인가이다.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 정말 하나도 없단 말인가?" 


- 사뮈엘 베케트,<이름 지을 수 없는 것> 중에서

<위대한 독서의 해> 앤디 밀러, 책세상 p127


때로 책 속에 내 마음과 생각이 오롯이 담겨 있어 전율을 느낄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 생활이나, 반복적인 직장 일, 지금 살고 있는 지역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등에서 한계를 느끼고 답답할 때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책 속으로 도피하고 싶은 심정일 때, 책은 가장 좋은 안식처가 되기도 하고, 정확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직시하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살다보면 마음 아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가슴 속에 무거운 돌 한 덩이, 시시때때로 찌르는 가시 한 조각 품고 살지 않는 이 누가 있겠는가.


마음이 아프다 못해 몸으로 도지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통증이 보이는 통증으로 옮겨가면 그나마 감당하기가 쉽기 때문이지 않을까.

얼음 바닥에 미끄러져 쇠로 된 배수구에 부딪혀 무릎이 깨졌다.마취를 했는데도 바느질 하듯 내 살들이 이리 저리 꿰이고 당겨지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나는 온통 쑤시고 저린 무릎에만 신경을 쓰게 생겼다. 마음이 쓰릴 때 진통제와 항생제도 분명 효과가 있으리라.

읽을 도서 목록에 있던 안정희 작가님의 <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를 읽을 때가 되었나보다.


"기록된 것만 남는다


기록되는 삶으로

우리는 다시 존재한다.

개인의 기록이 사회의 기록이 되고

사회의 기록은 다시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마침내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는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내며

우리네 삶은 더 강건해질 것이다."


-안정희<기록이 상처를 위로한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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