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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Feb 02. 2016

나를 뒤흔든 세 권의 책

<등대로>,<영혼의 미술관>,<자기 결정>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읽었다.

여자, 아내, 엄마, 딸이자 며느리,그 밖에도 내 이름 앞에 붙는 수많은 수식어들 때문에 정작 '나' 라는 존재는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드는 적이 많다. 

울프의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에 나오는 램지 부인의 모습 속에 우리 엄마도, 나도 보인다.

'삶과 죽음, 세월을 바라보는 깊은 눈. 무수한 인상의 단면들을 아름답게 이어 간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이라는 소개글에 마음이 끌려 읽으면서 문학이 가진 치유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아, 나도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조용히 마음 깊은 곳을 쓰다듬는 손길을 느꼈다. 

나의 마음을 아무도 몰라줘도 괜찮다는 생각도 했다. 1927년 이 책을 낸 버지니아 울프가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줬다는 생각에 흡족했다.

그리고 조금 슬펐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로서 살아가는 삶이 여전히 고되고,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릴리는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마치 문 하나가 열려 그 안으로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높직한 성당처럼 어둑하고 엄숙한 공간에 들어서서 말없이 둘러보는 것만 같았다. 멀리 세상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오고, 수평선 위에서는 증기선들이 연기를 뿜으며 사라져가고, 찰스는 돌멩이를 던져 물수제비를 뜨고.

램지 부인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아무와도 말하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 인간관계라는 극도의 모호함 속에서 쉬는 것이 기쁜 모양이라고, 릴리는 생각했다. 우리가 무엇이며 무엇을 느끼는지 누가 알겠는가? 아무리 친밀한 순간이라 해도 안다는 건 이런 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뭔가에 대해 말을 하면 그 뭔가를 오히려 더 망쳐버리지 않겠는가? 램지 부인은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곁에서 이런 침묵을 느끼는 일이 자주 있었던 것 같았다). 침묵하는 편이 오히려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그 순간만은 더없이 풍요롭게 느껴졌다. 그녀는 모래 속에 작은 구멍을 파고 그 순간의 완벽함을 묻어두는 기분으로 다시 덮었다. 그것은 마치 과거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 붓으로 찍어 쓸 한 방울의 은과도 같았다. "

<등대로>p225


여덟 명의 이이들을 키우고, 괴팍하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늘 북적이는 손님들을 치루느라 번잡한 일상 속에서 유일하게 온전히 그녀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절실했을까.. 

창 밖에 멀리 보이는 등대를 응시하는 그녀의 아름답고 쓸쓸한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어 입을 닫는 순간의 외로움을 알고 있다고, 이 책은 나직한 목소리로 내게 들려주었다. 소설이 가진 놀라운 힘이란!


램지 부인의 모습을 「마치 예술 작품처럼」 승화시켜 그림으로 남기려는 릴리의 모습을 통해 예술이 우리 삶 속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다시 느끼게 되었다. 

읽다 만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을 펼쳐들고 푹 빠져 몇 페이지를 읽었다.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의외로 중요한 기능들 중의 하나는, 고통을 보다 잘 견디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데 있다."

< 영혼의 미술관>p26


"당신의 상실감과 실망, 날개 꺾인 희망과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비탄은 당신을 진지한 회합의 일원으로 고양시킨다. 그러니 당신의 슬픔을 외면하거나 내버리지 말라."

<영혼의 미술관>p26


슬픔과 고통에도 품위를 부여하며, 더 고차원적인 곳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해주는 예술 작품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마치 예술 작품처럼.」그녀는 캔버스와 거실 앞 계단을 번갈아 바라보며 되뇌었다. 잠시 쉬어야 했다. 그렇게 쉬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노라니, 영혼의 하늘을 끊임없이 가로지르던 해묵은 질문, 광대하고 일반적인 질문, 이렇게 긴장을 풀고 있는 순간에 되살아나기에 딱 알맞은 질문이 그녀를 굽어보며 머물러 그늘을 드리웠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게 다였다. -단순한 질문이지만, 해가 갈수록 죄어드는 것이었다. 위대한 계시는 결코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 대신에 사소한 일상의 기적들, 어둠 속에 뜻하지 않게 켜지는 성냥불처럼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 때도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이것, 저것, 그리고 또 저것. 그녀 자신과 탠슬리, 그리고 부서지는 파도. 램지 부인이 그런 것들을 한데 모았고, 램지 부인이<인생이 여기 멈출지어다> 라고 말했고, 램지 부인이 그 순간을 무엇인가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었으니(릴리 자신이 또 다른 차원에서 순간을 영속화하려 애쓰듯이 )-그런 거야말로 계시인 셈이었다. 혼돈의 와중에 형태가 있으니,이 끝없이 흘러 지나는 것이(그녀는 구름이 지나가고 나뭇잎이 떨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문득 정지하는 것이었다. 「램지 부인! 램지 부인!」그녀는 거듭 불러 보았다. 그 모든 것이 부인 덕분이었다."

<등대로> p212


 닉네임은 「반짝이는 나날들」이다.

책 속에서 이 구절을 읽으며 느낀 감동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문학은 비루하고 무의미해보이는 일상에 가치를 부여하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고민거리들을 예술적 영감으로 끌어올려 새로운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게 한다.

<등대로>를 읽고 나서 집어든 책은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이다.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라는 부제가 온마음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영혼의 미술관>을 읽다가 '자기 이해' 부분을 읽으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세 권의 책...

소용돌이 치는 생각, 안에서 아우성치는 말들을 감당할 수가 없다. 

아,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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