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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Jul 17. 2023

출간 후 쪼그라든 마음을 펴는 법

괜찮아, 가늘고 길게 살아남자.

출간하기 직전까지 온갖 상상을 한다.


이렇게 힘들게 쓰고, 이토록 열심히 만든 책을 어떤 눈 밝은 MD가 알아볼 거야. 그래서 온라인 서점에 접속하면 뙇!!!! 첫 화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르륵 소개되는 오늘의 책 혹은 이번 주 책 정도에 소개가 되는 거지!

그러면 판매 지수가 쭉쭉 올라가서 편집장님이랑 나는 부둥켜안고 엉엉 울면서  드디어 우리의 진심과 열심을 드디어 세상이 알아주는 것 같다고 감격하겠지.

펑.


출간 후  며칠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온라인 서점을 들락거리며 판매지수를 확인한다. 오프라인 서점은 매장 재고 숫자가 줄어드는지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는데, 7에서 1로 줄었을 때는 세상 다 얻은 자의 마음이 되고, 다른 매장의 4자가 며칠 째 아무 변동이 없으면 하루종일 시무룩하다.

책을 네 권이나 냈지만 판매지수 3천 점(서점마다 점수 매기는 방법은 다르지만)을 겨보지 못했다. 어느 날은 700대 점수를 확인한 후 이리저리 클릭하다가 비슷한 시기에 출간한 이웃 작가님의 판매지수가 3만 점을 넘긴 걸 보게 되었다.

켁.


'숫자가 뭐가 중요해. 주위를 둘러봐, 나를 아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 내 책을 읽고 정성껏 리뷰를 써서 올리는 독자들, 무엇보다 함께 모임을 한 책벗들, 도서관과 책방 강의에서 만나  돈독한 인연을 맺어온 분들.... 셀 수 없을 만큼 많잖아? 질적으로나 감정의 밀도로 보나 어떻게 그런 점수 따위와 비교할 수 있어?'

깨갱.


격하게 수긍하면서도 쪼그라든 마음은 쉬이 펴지질 않는다.


세 번째 책하고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새 리뷰를 찾을 수가 없다.

책의 판매지수는 이제 찾아보지도 않는다. 얼마 전 일산 대형서점에 갔다가 아직은 신간 매대에 곱게 놓여 있는 네 번째 책을 보고 눈물이 찔끔 났다.

흐엉.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지고,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는 한숨만 나온다. 예전만큼 맘 편히 책을 사지도 못하고,  책을 읽다가도 그 시간이 사치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시와 그림책이라니. 이번 책, 참 손 가기 어려운 책 맞네.


이러다가도 누가 책 사진 한 장 올려주면 세상 다 얻은 듯 살맛이 나고, 은근히 기대하며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지인의 피드에 다른 책의 리뷰가 올라오면 괜히 뾰로통해진다. (나도 그 책 리뷰를 열심히 써놓고 말이다). 허락도 없이 기대하고 몰래 서운해하는 나날들. 부끄러움과 자괴감만 남는다.


다시는 책을 쓰나 봐라, 하고 생각하다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뭐래. 미쳤어. 누군가는 책 한 권 내고 싶어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글을 쓰고 있는데. 투고할 용기를 모으는데 몇 년, 투고하고 거절 메일 받으며 눈물 철철 또 몇 년.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정말.


그럼에도 가끔은 생각한다. 책을 내지 않으면 이런 이상야릇한 감정 안 느끼며 살 텐데. 내 책이 매대에서 잠깐 누워 있다 구석 책장에 꽂히고, 몇 달이 지나면 아예 자취를 감춰버린 걸 확인할 때의 공허감 같은 거 모를 뻔했는데. 지인들에게서 외면받는 모습을 볼 필요도 없고, 중고 매장에서 내 책을 만나 뻘쭘해지는 일도 겪지 않을 텐데.


글을 쓰고 저장하고, 지웠다 다시 쓰는 사이 리뷰 두어 편을 새로 발견해 감동했고, 아주 멋진 책방 독서모임에 초대받아 두둥실 마음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마음은 변덕스럽다. 얼마나 다행인가.


나의 친애하는 네 번째 책이 매대에서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은 또 바짝 쪼그라들겠지만 어쩌랴. 출간 후 파묻히는 책의 비애에 잠겨 혼자 몰래 결심하는 수밖에.


내 책들을 지킬 테다. 가늘고 길게 끝까지 살아남아보자고!


#우리의영혼은멈추지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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