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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Aug 05. 2018

① 존중하는 마음

'마음 순례길'에서 만난 마음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숨이 턱 막히는 날씨에 어느 날 문득 공포를 느꼈다. 이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면 우리 아이들, 그다음 세대들은 어떻게 살아가지? 우리가 함부로 쓰고, 조심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은 대가를 다음 세대가 치른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미안하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안 트는 것도 아니고, 매번 장바구니를 챙기지도 못하고, 설거지통에 물을 받아 하지도 않고, 나무를 심지도 않으니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당장 텀블러를 들고 다녀야지 하면서도 매번 까먹고 나가는 나를.


존중하는 마음

존중하는 마음은 쉽게 얻을 수 있는 마음이 아니다.

중요하다 여기고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오래 지켜보다 그 가치를 알아챘을 때나, 잃은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5월부터 시작한 요가 덕분이다.

마음 순례를 시작하며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째 날은 길을 걷다가도 울컥, 커피를 마시다가도 줄줄 눈물을 흘리며 글을 썼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좌절할 만한 일이 아니었고, 그토록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작은 조각의 서운함, 사소한 실수, 순간순간의 애달픔, 생각대로 되지 않고 가끔은 삐그덕거렸던 일, 어쩌다 아깝게 놓쳐버린 풍경... 이런 조각들이 모이고 쌓여 마음속에서 와르르 한꺼번에 아우성을 쳤을 터.

첫째 날 쓴 글을 봐도 그 눈물이 힘들어서 흘린 것만은 아니었다.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너무 외면하고 살았다.

나뭇잎들의 살랑거림, 동그란 아기의 뒤통수와 옹알거리는 소리, 새들의 지저귐, 지금 여기. 이렇게 좋은데.  2018.6.17


순례길 첫날에 마주한 것은 작은 카페 마당 앞에 펼쳐진 초록빛의 일렁임,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누는 부부와 아기의 정겨운 목소리였다. 모니터와 휴대폰 액정, 시간에 쫓기며 읽었던 책들에서 시선을 들어 비로소 눈앞의 실제 풍경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내 몸을 바라보게 되었다.


몸이 말했다. 돌봐줘서 고맙다고


세 번째 날의 기록은 "몸의 발견, 진짜인 것들"이다.

제일 좋아하는 요가 선생님이 수업하는 날이었다.

나긋나긋, 부드럽고 진중한 목소리로 몸 구석구석 호흡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평소에 쓰지 않는 근육들과 관심을 두지 않았던 몸의 부위에 주의를 기울이며 몸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도무지 뭔 소리인지 모를 요가 용어에 쩔쩔매고, 생소한 말들이 많아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도 은은한 불빛과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장소에서 내 몸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되었다. 지난겨울 사이 몸무게가  5kg 늘었다. 대사기능이 떨어지는 나이다 보니 먹고 싶은  걸 참고, 신경을 쓰는데도 살이 쪄서 몹시 우울했다. 키가 작고 뼈도 가는 체형이라 살이 쪄도 별 티가 안났었는데, 작년 겨울부터는 자주 듣는 인사가 "살쪘네?"였다. 아니 뭐 그렇게 확인을 해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매일 같은 패턴의 옷(배를 가리고 허벅지를 덮는 것)을 입고 다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처음으로 하늘거리는 봄옷에 시큰둥한 나를 보며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 몸까지 따라 아픈 적은 많은데,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에 병이 들 조짐이 보였기 때문이다. 목돈을 주고 운동을 하는 게 여의치 않아 망설이고 망설이다 시작한 요가다.  왜 돈을 들여 운동을 하냐는 남편의 핀잔도 들었다. (돈 안 드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면 나도 따라 했을 텐데)

요가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변화가 왔다. 뭔가 가벼워진 느낌(사실 무게는 전혀 줄지 않았다)이었다. 등을 꼿꼿하게 펴고 걸으려고 의식하다 보니 구겨진 마음도 펴지는 것 같았다.

동작을 따라 하고 설명을 듣다 보면 '그래 여기였어, 너 많이 아팠구나. 미안해. 지금 찢어질 듯 아픈 너, 너의 수고를 기억할게.'이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게도 되었다.

제일 좋았던 건, 낯선 동작을 따라 하느라 낑낑대다가 땀에 흠뻑 젖은 채 휴식을 취하는 마지막 10분이었다.

어느 날은 불을 끄고 누웠는데, 강사가 옆에 있던 수건을 살며시 눈 위에 올려주었다. 도심의 불빛이 눈에 어른대다 암흑으로 변하는 순간 갑자기 흑, 눈물이 터졌다.

한 번도 나에게 말해주지 못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십분만 쉬어. 걱정도 하지 말고, 계획 같은 것도 세우지 말고, 이해하려 애쓰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완벽하게 쉬어. 딱 십분만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매번 그 10분은 몸을 돌보지 않은 나날들에 사과하는 시간이었고, 고여 있는 마음의 노폐물들을 빼는 시간이었다. 가끔은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어쩌다 울기도 했다. 내 몸이 안쓰러워서, 기특해서, 그 시간이 그저 좋아서.

아픈 근육을 지그시 눌러주는 마음, 가만히 눈 위에 수건을 얹어주는 마음, 몸에게 말을 거는 마음.

요가를 배우며 내 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이 책은 젊은 나이에 벌써 자기 몸에 말을 걸며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넓고 깊게 누릴 줄 아는 이가  쓴 책이다. 깊은 호흡을 내쉬는 법을 익히며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요가와 삶이 닮았다며 5가지 요가의 특징을 말하는데, 수긍이 가는 말이다. 이걸 나도 몸으로 직접 배우고 있어 기쁘다.

1. 해도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2. 옆 사람이 나보다 잘하는 걸 보면 질투가 난다.

3. 노력해도 모자란 게 느껴지면 서글프다.

4. 아주 조금씩 나아가는 재미가 있다.

5. 간신히 균형을 잡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리듬이 생긴다.

-이아림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몸도 마음도 이 지구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무덥다. 더 망가지기 전에 지켜야 하는 것들이 있다. 존중하는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몸을존중하는법

#반짝이는나날들의마음순례


반짝이는나날들, 이화정

*보물 같은 책들과 더불어 반짝이는 나날들* 책과 책,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북 코디네이터이자<모두의 독서>저자입니다. 독서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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