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순례길'에서 만난 마음
마음 순례길에 오른지 일주일이 되어갈 무렵, 단골 서점인 <밤의 서점> 인스타그램에 이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밤의 점장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추천받아 읽은 뒤 마음 순례를 시작한 저로서는 '헉!!!! 아니 창피하게 내 얘기를 쓰시다니!'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점장님을 다시 만난 날 다짜고짜 " 으~ 이거 딱 제 얘기인 거죠?" 했더니 "엥? 제 얘긴데요!!!" 하셔서 둘이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평소 세 배의 하트가 날아들면서 댓글도 다 저처럼 자기 얘기 같다고 폭풍 공감을 하더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의 작업을 존중하라."
이 말이 질투심, 시기하는 마음, 열패감에 시달리던 저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 되었는지 모르실 거예요.
며칠 전 블로그에 '3년 전 오늘' 글이 올라왔는데, 열어보고 깜짝 놀랐지요. 두 번째 '질투하는 마음'을 쓰기까지 고민이 많았거든요. 저의 치부를 드러내는 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질투는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이다. 누군가 나를 질투한다 해도 여전히 그 사람은 나의 동료인 것을 잊지 말아라.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질투한다고 나를 형편없다고 여기지 마라. 질투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이다. -이철환 (세바시 강의 중에서)
책을 내고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겼지요.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했어요.
'동종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너무나 매력적인 컨셉으로 책을 내시면 부러웠어요. 출간 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사랑받는 걸 보면서 질투도 했지요. 제가 쓰고 있는 글과 비슷한 내용의 책이 훌륭한 편집자와 탄탄한 출판사를 만나 세상에 나올 때마다 좌절하고 주눅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쓰는 글은 저의 고유한 이야기라는 것을 잘 알기에 소신을 가지고 쓰면 된다는 것도 알고 있고, 소통하는 방식이 꼭 책이 아니어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때도 많았습니다만, 마음이 힘든 건 힘든 거였어요.
그 마음을 억누르고, 그렇게 속이 좁아서야 되겠냐고 자책하고, 자꾸 비교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시간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곤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수첩을 뒤적여보았어요.
-부럽다, 정말 부럽다.
하지만 이 마음을 뛰어넘고 싶다. 의연하게 오늘을 잘 살고 싶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내 글을 소중히 여기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실제의 삶, 눈앞에 있는 사람들과 제대로 잘 관계 맺으며 사는 것. 여린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쓸쓸한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어보자.
-'내가 카미노에서 원하는 건 행복을 가로막는 마음속 장벽을 제거하는 거야.'
-중요한 건 제 깜냥만큼 열심히 걷고 전념하고 추구하되 집착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불가의 가르침처럼 '내가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는 나에게 무한히 중요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그걸 비웃을 수 있는 태도'를 배우고 싶었다. '(나의 산티아고)
-장벽을 부수는 일이 어쩌면 순식간에 이루어질 수도, 반대로 평생이 걸릴 수도 있지. 내 마음의 장벽도 부수고 다시 쌓고, 허물어지는가 싶으면 더 견고해지고. 어떻게 없애야 하는 거지?
-내 깜냥, 내 영역,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그래 그렇게.
-너에게 집중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더 멋지고 근사한 너를 향해 나아가. 조급해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하라고 다그치지 말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처럼 되기를 꿈꾸기 보다 내가 가진 것으로 뭔가를 해보는 게 중요해. 한 걸음씩 가보자, 또 마음 상해도, 또 실망해도, 또 실수해도.
-책이 전부는 아니지. 책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이가 있잖아.
-침묵 속에 있지만 온 우주가 나를 향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실수는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거라고. 그러니 다시 시작하라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처음으로 가서 그 마음을 다시 주워 돌아오라고.
-오늘의 묵상 글, 너무 찔린다.
'우리는 더 많이 갖기 위해 너무 바쁘다. 욕망하는 것이 많으면 더 많은 일들을 벌이고 더 많이 실패하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상처 받고 좌절하기도 하지. 내가 바라는 게 뭘까? 책을 내서 많이 팔리는 것? 유명해지는 것? 인세를 받아보는 것? 많은 이들 앞에서 강의하는 것? 나를 아는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해 주는 것? 인정받는 것? 칭찬받는 것? 여기저기서 나를 찾아주는 것?
바라는 것이 많을수록 실망하고 좌절할 순간이 더 많아질 게 뻔한 일. 그렇다고 모든 일이 허망할 뿐이라고 아무런 욕망 없이 사는 삶이 편하고 행복할까? 로버트 하스는 릴케에 대해 '자신의 황량함을 살아낼 필요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멀고도 가까운> 263
황량함을 견디고 사는 것, 그 황량함에도 씨앗을 뿌리고 땅을 고르는 것. 나는 무엇을 선택하고 싶은 거지?
"나를 정성껏 보살펴 주는 것, 그것이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이철환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감정'에 대한 통찰력-그것은 첫째, 나를 위로하고, 나를 이해하는 소통의 도구로 사용된다. 그리고 타인을 위로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소통의 도구로도 사용된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재능이 아니라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나를 인정하는 것은 나를 기다려주는 것. 언젠가는 멋진 사람이 될 거라고, 언젠가는 이 장벽을 넘을 수 있다고, 고치기 힘든 습관이나 상황들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내가 내 손을 잡아주어야 남도 내 손을 잡아주는 것. 나를 정성껏 보살펴 주는 것 그것이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이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