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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Sep 06. 2018

 ③ 연약한 마음

'마음 순례길'에서 만난 마음

바람이 분다. 가만히 두어 시간을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몹시 분주한 며칠을 보냈다. 급한 일, 중요한 일,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어제저녁 도로가 막혀 휴가 나왔던 아들을 아슬아슬하게 부대 앞까지 태워다 주고 나서 맥이 풀렸다.

어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 선선한 바람처럼 오늘 아침 내내 낯선 느낌이 들어앉은 마음과 씨름을 한다.

힘들었어, 투정 부리고 싶고, 

마음이 좀 상했어, 하소연하고 싶고,

좀 벅차,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은 마음.

근데,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그 마음.

밖에서 보면 나는 용감한 사람이었지만 나의 내면은 겁에 질린 상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알게 됐다. 나의 가면은 너무 무거워서 계속 끌고 다니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그 가면이 내게 해준 것이라고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의 진짜 모습을 알리지 못하게 한 것 밖에 없었다. 가면은 나에게 몸을 웅크리고 자기 뒤에 조용히 숨어 있으라고 명령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의 불완전함과 취약성을 보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렇게 숨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었다. -브레네 브라운 <마음 가면> 75

딱 2년 전 이 책을 읽었다. 취약함과 수치심이 부정적인 마음만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취약한 마음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취약성과 함께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강할수록 용기는 커지고 목표는 선명해진다'라는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그 목표가 세상적인 성공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하며 사는 삶"을 향하고 있다는 것에도 고무되었다.

'온 마음을 다하는 삶' , 정말 그렇게 살고 싶었다.


이 책을 읽고 겹겹이 썼던 마음 가면을 하나하나 벗었다. 그 사이 새로운 가면을 쓰기도 했다.

정직하게 나를 마주 보게 해주는 책들 덕에 가면을 벗었고, 진심과 성의로 만나는 이들 덕분에 가면을 벗을 때도 있었다.

'자기 회의와 자기 비난'의 메시지로 점철된 수치심을 이겨내게 하는 건 '이야기의 힘'이었다.

우리가 수치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수치심은 수그러들기 시작한다. 마치 그렘린들이 빛에 노출되기만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것처럼, 언어와 이야기는 수치심에 환한 빛을 비춰서 수치심을 제거한다. <마음가면>

책에서 '언어'를 찾고 책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온 마음을 다해 살았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 사이 깨달은 게 있다면 마음은, 수시로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연약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때로 가면을 쓰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은폐하고 포장하기 위한 가면이 아니라 나의 힘듦이 전염되지 않도록, 혹은 상대방을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가면도 때로 필요하다.

괜찮은 척, 씩씩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가면이 아닌 분명한 의사를 표현하는 표정을 담은 표정과, 말도 잘 준비해둬야 한다.

당신의 무례함이 괜찮지 않습니다, 단호한 눈빛.

그런 부탁은 저를 힘들게 합니다. 잠시 쉬고 싶습니다.

당신에게는 사소한 말이지만 저에게는 모욕감을 줍니다.

혼자 감당하기에 벅찹니다. 도움이 필요해요.

지극히 사소한 실수에 다친 마음, 티 안 나는 무심함에 반응하는 예민함, 누적된 피로, 외롭고 고된 작업, 미묘한 소외감,.... 이런 연약한 마음들을 쓰다듬는 아침.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고,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안 좋을 수 있고, 하다가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고, 아낌없이 주는 것들이 보람은커녕 씁쓸함만 남을 수도 있고, 잘 하려고 한 건데 와장창 깨질 수도 있지 뭐, 중얼거리며 글 쓰는 지금.

연약한 마음을 지닌 모든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힘주어 쓴다.

"그래, 나는 불완전하고 취약한 존재야. 때로는 뭔가를 두려워하기도 하지. 그래도 나는 용감한 사람이야. 나는 사랑받고 어딘가에 소속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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