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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Nov 18. 2017

#001-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365 글쓰기 프로젝트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엄청난 삶의 혼돈을 정돈하고 저편으로 건너간다. 또한 글을 씀으로써 좋은 순간들을 붙잡아둔다.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더욱 깊이 있고 의식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바버라 애버크롬비 <작가의 시작> 들어가는 말 중에서

이 책만큼 글쓰기의 욕구를 불러일으킨 책이 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본다.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은유 작가다. 단단하고, 빈틈없는 글. 매료된 만큼 좌절감도 깊었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나도 이런 마음이었다고.'

악다구니 같은 말들이 가슴 저 밑바닥을 휘저을 때마다 입을 틀어막았었다. 여차하면 그 말들이 상대방을 할퀴게 될까 봐,  쏟아져 나온 말들이 결국은 나를 덮치는 오물이 될까 봐 삼키고 삼켰던 말, 말, 말들.

누군가는 그 말들을 깊은 사유와 성찰을 거쳐 자신만의 언어, 그것도 품격 있고 아름다운 언어로 배출해 놓은 책들을 볼 때마다 부럽고, 고맙고, 질투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작가의 시작>은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막막함과 두려움에 대해 너무도 적나라하게 작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풀어놓는다. '글을 시작할 때는 침묵과 공허가 아우성치는 공간'으로 '안전하고 쉬운 길 없이 발가벗은 채'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나는 왜 그런 길로 기꺼이 들어서려 하는 걸까?


내 생각과 글솜씨는 보잘 것 없어도 쓸 거리는 많다는 것을 새삼 발견하고 용기 내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블로그를 시작한 2015년 1월부터 써온 글이 677건이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포스팅을 하려고 시작한 블로그였다. 상처받기 두려워 마음의 울타리를 단단히 세워놓고 살았던 내가 공개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좋은 책의 힘은 그 상상을 초월한다.

이야기는 생명력이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진폭이 클수록 펴져나가게 마련이다. 얘기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만든 보물 같은 책들과, 그 책들과 연결된 소중한 인연들 덕분에 {책보물 찾기}에 차곡차곡 글이 쌓였다.


아직 못다 한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아 임시저장 글에 찍히는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간다.

글을 쓰고 있는데 마음이 환해지는 소식을 담은 문자가 울린다. 어제 새로 시작한 『나만을 위한 진심의 공간을 짓다』 2기 모임에서 만난 분이 집에 돌아가서 딸들과 모임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냈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신다. 다음 책인 <82년생 김지영>을 단숨에 읽었다는 이야기와 딸을 위해 소개한 책 제목을 알려달라 해서 몇 권 사진을 찍어보내드렸다.

친절한 안내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몸에 친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같다는 엄청난 칭찬을 들었다.

'친절한 사람'은 내 인생 목표 중 중요한 부분인데 (원래 친절한 사람이 아니므로) 이야기를 이어 쓰다가  멈추고  복사해서 임시저장 글에 붙여 놓았다. 글을 쓰다 보면 삼천포로 빠지곤 하는 나의 한계ㅜㅜ

오후에 들른 <밤의 서점> '폭풍의 점장'님과의 폭풍 수다도 꼭 기록해놓고 싶다. 정말 마음 통하는 사람과 얘기하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얘기의 주제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숙제 같은 삶의 문제일지언정 얘기를 끌고 가는 사람의 인품과 마음의 온도에 따라 비난과 불평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차원 높은 사고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놀라운 밤의 시간들.

언젠가 오프라인 서점을 운영하게 될 때 나는 꼭 <밤의 서점>의 두 분 점장님들(밤의 점장/폭풍의 점장- 두 분은 고교 동창이다)을 모델 삼아 따뜻하고, 정겹고, 편하고, 푸근한, 무엇보다 지적이고 우아한 서점 주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아. 이 이야기도 자세히 써야지!


아직은 뒤죽박죽인 내 글들, 그래도 열심히 쓰기로 한다.

거리를 걷다 어지러이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낙엽들이 꼭 내 마음 같아 쓸쓸해질 때, 글을 쓰며 정신 사납게 하는 것들을 한 곳에 쓸어 담아야겠다. 구멍 뚫리고, 밟히고, 색이 바랜 잎들 사이에서도 고운 잎사귀 하나 발견해 소중히 집어 들듯, 그 어지러운 생각들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길어올리도록 글을 쓰겠다.

수시로 식어버리는 마음속 난로에 불쏘시개 같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나날들.
그 소중한 인연, 그들과 책의 언어로 짓는 둘만의 공간, 혹은 여러 사람들이 완성해나가는 '우리들의 방' 이야기를 성실하게 기록하겠다. 

나는 이제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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