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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May 10. 2020

마음을 차곡차곡 모아 재난의 방어벽을

<호랑이 바람> 김지연 작가님 북 토크 네 번째 이야기


우리가 할 일은 마음을 차곡차곡 모아 재난의 방어벽을 쌓는 것.

지구는 점점 황폐화되고, 인권과 평화에 대한 교육은 더 절실해지고,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노동과 생존의 문제는 다급해졌다. 자연적, 사회적 재난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할 일은 튼튼한 방어벽을 쌓는 일이 아닐까.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자신을 추스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의 보호벽과, 더불어 사는 이웃과 함께 쌓아 올린 함께라는 이름의 방어벽을 쌓는 일만큼 연대의 힘이 필요한 곳이 있을까.

 호랑이 바람에 맞서는 연대의 맞불-작가, 출판사, 독자의 연대

다림 출판사와의 인연은 <백 년 아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책모임에서 제안한 작은 아이디어와, 함께 참여한 독자들의 합작품으로 100년의 한국 역사 속 관련 사건을 다룬 책과 영화, 드라마 등을 정리한 포스터가 탄생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만든 포스터를 각 지역 도서관에 무료로 배포하고, 누구든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준 출판사라니. ‘기획 :선향’이라는 작은 글자에 회원들은 감동했다.

다른 출판사에서 거절받은 <백년 아이>가 탄생한 스토리, 고성 산불을 모티브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고 바로 작업에 들어간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가 신뢰와 애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느낀 자리다. 포토샵을 못해 직접 오리고 붙여 만들었다며 털털하게 웃는 작가나, 손작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편집자나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림책에 대한 애정을 더 끌어올리는 두 사람의 호흡이 돋보였다.

원본 한 장 한 장을 볼 때마다 감탄했고, 마블링 작업이나 판화의 원본이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다른 느낌으로 변한 모습도 신기했다. ‘고성’,’ 높은 성‘이라는 제목이 '호랑이 바람‘’으로 정해지기까지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는 또 얼마나 흥미진진했는지! 독자로서 작가의 혼이 배어있는 원본을 볼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책 한 권에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담기 위해 분투하는 출판사와 편집자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랑이 바람'은 높은성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모든 것을 순식간에 빼앗아가 버렸다. 화마가 휩쓸고 간 나무들은 인간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런 나무 앞에 작은 아이가 서 있다. 그 아이가 끌어안은 건 불탄 나무만이 아니다. 이재민들의 고통을, 그들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의 마음을 같이 안아주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작가님에게 던진 질문의 답이 그림책 안에 숨어 있다. 휠체어를 미는 이 뒤에서 함께 뛰고, 앞을 못 보는 이를 부축하고, 소방관을 응원하고, 아기새들을 구출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살아남는 것.

까맣게 타버린 높은 성을 바라보며 자꾸자꾸 눈물이 나도 다시 희망하는 것.

내가 쌓아갈 마음의 높은성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이 아닐까.


모임을 마치고 난 뒤 후기들이 SNS에 올라왔다. 그들의 선한 영향력이 조용하지만 힘차게 퍼져나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연대의 바람, 큰 바람(hope)을 담은 작가와 편집자의 마음이 독자의 마음을 만나는 장면 같았다.

호랑이 바람은 산불, 바이러스, 인재, 불신과 공포, 편견과 증오 같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삶을 집어삼키려 한다.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는 소식 앞에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가지만 <호랑이 바람>의 마지막 장면을 희망의 끈으로 붙들고 싶다. 우리가 함께 달려가 연대의 맞불을 놓고 튼튼한 방어벽을 쌓아 올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오늘 내가 심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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