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풍경도 이랬으면

온통 초록인 창밖처럼

by 이화정

햇살 아른거리는 아침의 창


흔적,

그림자.

파장.

여운.


참 이상하기도 하지.

손바닥만 한 화면을 통해 보이는 글들이 얼마나 다양한 자국을 남기는지!

마음이 와장창 깨지거나 흐뭇해지고.

먹구름이 몰려왔다가 파아랗게 개고.

더없이 쓸쓸해졌다가 불현듯 코끝이 찡해지고.

그 마음이 한 사람에게서 파생되기도 하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서 전해지기도 하고,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에게서 나오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에게서 날아오기도 하고.


마음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서,

예측 가능하고, 변질되지 않는 나무 앞에 앉곤 한다. 끊임없이, 조건 없이 주기만 하는 나무에 기대어 조용히 울고 싶은 날, 그런 날들의 기록.


서운하거나, 고맙거나. 의아하거나, 감사하거나. 얄밉거나 애틋하거나. 실망스럽거나, 자랑스럽거나. 짜증 나거나 안쓰럽거나. 좋아 죽겠거나, 미워 죽겠거나.

이 모든 게 나로부터 나온다는 게 그게 더 이상한 지도.


비 내리는 아침의 창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
다정히도 불어오는 바람이길래
내 숨결 가볍게 실어 보냈지
하늘가를 스치고 휘도는 바람
어이면 한숨을 몰아다 주오
-김영랑


비가 내리지만 바람 시를 읽으며 바람 노래(이소라, 바람이 부네요)를 무한 반복 들었던 날,

'숨결'과 '희미한 빛'에 대한 글을 읽었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p86.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젊은 작가 수상작품집>

'건물을 부수고 사람들을 내쫓느라 그렇게도 분주하고 그렇게도 가혹했던 마음'에 저항하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다른 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비추어주었던 사람. 긴 숨을 내쉬며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나도 따라가고 싶은 그런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떠올리는 이름들.

온라인 모임의 복작복작함과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 덕분에 자주, 많이 웃었다.

조심스레 만나 다정하게 포옹한 이들의 온기로 이유 없이 시렸던 마음이 녹았다.

나의 길에 빛을 비춰주는 사람들이 있어 수시로 마음이 무너지고 막막해질 때마다 앞을 향해 묵묵히 걷는다.

[북 코디네이터 쓰기 모임] 첫 번째 과제물이 도착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파일을 정리해 한곳에 모아 놓고 다시 정독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때로 이게 병이 아닌가 싶을 만큼 눈물이 많아진 나는 스스로를 의아해하며 한참을 울다가 읽다가를 반복했다. 왜 그리 가슴이 사무쳤을까. 딱히 슬픈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오래된 수첩들과 열심히 읽은 책 사진, 조심스럽게 쓴 글들일뿐이었다. 찬찬히 보며 그이가 살아왔을 날들을 상상해보려 애쓰는데, 다 내 얘기 같고, 다 내 마음 같아서 그랬을까. 참 열심히 살아온 흔적들, 수시로 흔들리고 넘어졌지만 여전히 애쓰며 살고 있는 모습, 꾹꾹 묻어둔 이야기, 오랜 시간 혼자 끄적이며 느꼈을 외로움이 묻어나는 글들 앞에서 어쩔 줄 모르던 나는 티슈 통을 아예 앞에 놓고 작정하고 울었다.

새로운 일을 벌이고,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 알아가고, 좋아하게 되고, 마음을 쏟아붓고, 아껴주다가 불현듯 사그라들고 떠나가고 변질되어 가는 마음 앞에서 나는 어찌할 줄을 몰라하다가 숨고 싶어 진다.

'너무 마음 주며 살지 말자, 너무 애쓰지 말자, 오지랖도 그만....' 고개를 파묻고 원래의 조그맣고 쪼그라든 모습으로 작아지곤 한다. 그 글들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그러고 있었다. 근데 참 이상하게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의 글에서 또 새마음이 흘러들고 있었다. '아, 안 돼, 이건 또 뭐지....'

여러 번 모임을 함께 했어도 여전히 떨리는 마음으로, 너무나 아껴주는 마음으로 나에게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내 마음은 또 부풀어 오르며 구겨졌던 마음이 펴지기 시작했다. 창 밖에는 참 다정히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만약 내가 책을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쓸데없이 비교하고, 스스로를 폄하하고, 미미한 성과에 자책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어 질 때마다 그렇다. 책을 또 쓰고 싶은 욕구가 치솟을 때마다 불행해지는 내가 한심하다. '뭐니, 너는. 도대체 뭘 바라는 게냐', 스스로를 조롱한다. 그러면서도 새 책 기획안 폴더에는 이런저런 원고가 차곡차곡 쌓인다.


'좋은 책은 독자가 알아본다'라는 문장을 보고 나서 마음의 파장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던 적이 있다. 저자로서는 가시 같은 말이고, 독자로서는 격하게 공감하는 말이었다. 좋은 책을 쓰지 못했다는 자책감, 저조한 판매 실적에 대한 민망함 따위에 휩쓸리면 한없이 마음이 오그라든다.

창 밖은 온통 초록이다.

'내 마음도 저랬으면 좋겠어.'

하염없이 창을 바라보던 요 며칠, 결론은 늘 똑같다

지치지 말자.

그리고 놓치지 말자.

나는 쓰는 사람.

이렇게 마음을 포착해 빈 화면 위에 옮겨 놓는 사람.

내 마음을 돌보고, 어쩌면 그 누군가의 마음에 신호를 보내 괜찮다고, 당신의 마음도 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다정한 숨결을 보내는 사람.


무더기로 쌓아놓은 책이 있는 창

마음먹은 대로 마음이 움직여주는 건 아니어서 여전히 쓸쓸하고, 때때로 기운 나는 일상. 내 곁에 가장 속 깊은 친구는 저 창밖의 숲, 그리고 책. 50대의 봄날이 간다. 그런대로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