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나의 동굴은 다락방 차실이었다. 두 평이 채 되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있으면, 그나마 좁은 이 공간도 탕관에서 뿜어내는 수증기에 가려 사라지고, 흐르는 시간도 향연에 날아가버렸다. 거의 완전한 사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젊은 날의 특권은 '야망의 실현'이라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야망은 공적 명예를 꿈꾼다. 알량한 야망을 이루고자 수십 년 간 노역에 지치고, 알 낳은 연어처럼 강바닥에 두러누울 때, 그때서야 우리는 잔근육처럼 우리를 지탱해주었던 사적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퇴임 후 깨닫는다. 증발하는 공적 성취의 끄트머리를 보며 일상의 품으로 파고든다. 잔근육이 퇴화하고서야 잔근육을 찾는다.
나는 젊은 날을 그렇게 소모적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공적 활동은 사적 활동을 보장받기 위한 대가에 불과하다. 교사인 나 역시 특별한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오진 않았다. 그저 사회와, 뒤이어 태어난 인간 후배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자 했을 따름이다. 더욱이 교사에게 '야망'이란, 허상에 불과하다. 성공의 여부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었을 때 판가름이 난다. 그러나 교사가 걷는 길의 끝에는 그 어떤 결과물도 없다.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오류인 직업. 그렇기에 나는 다만 묵묵히 걷는다. 걷는 과정을 제자들에게 얼핏 들킨다. 인위적으로 나를 꾸미지 않을수록, 그들은 먼저 삶을 시작한 한 인간을 오롯이 관찰할 수 있게 될 테지.
그렇기에 즐겁게 삶을 꾸리고 행복을 발견해가는 사적인 일상은 교사인 내게 매우 중요하다. 어린 친구들이 도처에 숨어 나를 엿보고 있다. 때론 모방하고, 때론 비판하고, 질문하고, 기록하고, 살피고, 건드리고...
그러한 사적 일상의 중심에 나의 차실이 있었다. 일상을 얻어내려 하루종일 대가를 치르고는, 서둘러 차실에 오르는 일이 삼백육십오번 반복되었다. 나의 차실은 하루종일 공허하다, 저녁에 제 역할을 찾곤 했다. 공간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곳에 생명이 깃들어야 한다. 다락당은 내가 들어섬으로 인해 지붕 아래 창고에서 비로소 '차실'로 변모했다.
황상의 스승 정약용은 사상 체계를 쌓기 위해 차를 마셨다. 그리고 그 제자 역시 차를 마시며 스승이 내린 '삼근계(三勤戒)'를 평생 붙잡고 살았다. 황상의 친구인 김정희는 그의 차실에 '죽로지실'이라는 현판을 걸어준다. 대나무화로가 있는 방, 호암미술관에 전시된 현판을 보면서 나는 황상의 차를 떠올리기보다 그가 걸어간 일상의 흐름을 되짚었다. 느렸을 테고, 그럴수록 많은 관찰과 사색이 있었을 것이다. 느릴수록 폭발하는 상념, 그 상념을 다독이며 남긴 그의 자취.
내가 선현에게 본받고 싶은 건, 걸음이 아니라 걸음을 걷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다.
올해 역시 나는 '차'를 통해,
주제에 몰입했고, 타인을 응시했고,
몸과 마음을 둘로 나누지 않게 되었다.
이 습관을 내년으로 이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