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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현 Apr 25. 2016

40대, 산행의 의미를 알다

연령대별 산행의 의미

내 얼굴에 여드름이 뒤덮던 시절, 10대

10대 시절, 산은 4-50대 어른들만 오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서, 얼굴은 오만상으로 찌그린 체 마지못해 북한산에 오른 기억이 있다. 검은색 등산복, 투박한 등산화, 밤색 등산모까지 천편일률적인 복장에 줄줄이 산에 오르는 아저씨, 아주머니들 뿐이었다. 그 당시 산에 오르는 10대들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친구들은 대학로에 있었기 때문에 '왜 내가 지금 이 산에 오를까?'라는 생각에 이해가 안 되었다. 몇 번을 끌려간 후 요령이 생겼다. 몸이 아프다거나 친구와 약속이 있다거나. 그땐 거짓말을 해서 라도 산에 안 가면 좋았다. 그땐 아버지가 '왜 산에 같이 가자고 했는지?' 알 리가 없었다. 그 깊은 뜻을 알기에는 나는 아직 어렸다.


파전에 막걸리 먹으려고 산에 오르던, 20대

싱글 라이프를 즐기던 시절, 회사 단합대회로 가끔씩 산에 올랐다. 당일치기로는 근교에 북한산, 관악산으로 다녔다. 밤 10시에 양재역에서 출발하는 야간산행도 한 적이 있다. 새벽 3-4시쯤 설악산에 도착해서 해뜨기 전까지 정상을 향해 걸었다. 관광버스 12대에서 내린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각 자 헤드라이트를 길라잡이 삼아 일렬로 줄 맞춰 걷는 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었다. 그 당시 젊은 혈기에 지치는 지도 모르고, 산다람쥐같이 빠르게 오르고 내려갔지만 사실은 본심은 따로 있었다. 정상을 거친 후 하산을 해서 '파전에 막걸리'를 빨리 먹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 욕심에 산에 올랐던 것 같다. 


사회생활과 육아로 바쁜데 산에 갈 시간이 없던, 30대 

정확히 30살에, 지금은 아내를 만난 지 1주일 만에 설악산에 같이 간 이후로 30대에 산에 오른 기억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다. 주말에는 회사에 출근할 때도 많이 있었고, 모처럼 쉬는 날에는 아이들을 봐야 할 때도 많이 있었다. 그 당시 산에 오르는 건 일종의 사치라고 생각했다. 먹고 살기 여유 있는 사람들이 누리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큰 아이가 12개월 때였을까? 아이를 등산 캐리어에 싣고 관악산 정상까지 등반한 적이 있다. 결혼하면 꼭 해보고 싶은 젊은 아빠의 로망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그 뒤로는 등산 캐리어를 사용한 적이 없기는 했지만.


산행의 의미를 서서히 알아가는, 40대

2014년 겨울 한라산 겨울산행, 2015년 7월 중국의 천문산에 이어 아내와 한라산 등반을 했다. 제주도 날씨가 참으로 신기한 것이, 새벽에 창밖을 보니 바람만 부는 구름 낀 날씨여서, '백록담까지 갈 수 있겠군'이라는 희망과 함께 출발했지만, 성판악 입구에 도착할 때쯤 강풍과 함께 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매표소 아저씨께 여쭤보니 "오늘은 정상까지 못 갑니다"라는 한마디로 나의 희망을 단숨에 무너뜨리셨다.

예전 같으면 궂은 날씨를 탓하겠지만, 

지금은 '이런 날씨에 언제 산에 올라보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예전 같으면 정상까지 못 오름을 아쉬어하겠지만, 

지금은 '다음에 올 때 정상까지 가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예전 같으면 앞만 보고 땅만 보고 걸었겠지만, 

지금은 '저 나무는 대체 몇 살쯤 됐을까?' 라며 가끔 옆을 보게 되고

예전 같으면 '나 혼자 들으면 되지'라는 생각에 최신가요를 들으며 걸었겠지만,

지금은 '저 나무 사이로 들리는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가 참 좋다'라는 생각에 자연소리를 들으며 걷게 된다.


내 나이가 '산행의 의미를 서서히 알아가는' 40대여서 좋다.

더 좋은 건 '산행의 의미를 서서히 알아가는' 아내도 40대여서 좋다.


나무에 매달려있는 리본이 인간처럼 감정이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말없는 외로움? 뜻깊은 보람? 쓸쓸한 고독?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
아님 무념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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