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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현 Apr 23. 2016

두 번째 돌잔치

Happy Rebirth day to me

나 내년에 돌잔치할까?


내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많은 분들이 병문안 와주셨다. 사정상 병원에 못 오신 분들도 멀리서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외아들로 자라서 평소 혼자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이렇게 걱정해주고 응원을 받으니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주변 분들의 격려와 응원에 보답하고 싶었다. 수술 마치고 건강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병실에서 아내에게 물었다.

"나 내년에 돌잔치할까?"
"돌잔치?"
"바쁜데 여기 와 주신 분들이 고맙잖아. 내 걱정해줘서. 그분들 초대해서 식사 대접하고 싶어. 수술 1주년이 되는 날,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자축의 의미도 되고"
"좋은 생각인데? 난 찬성이야"

이렇게 수술 1주일 만에 두 번째 돌잔치가 계획됐다. 돌잔치 한 번이면 최소 2-300만 원은 들 텐데,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었다. 그 당시에는 돈 보다는 건강이 최우선이라고 늦은 후회할 때이고, '1년 후 더욱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자'라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했다. 뜻깊은 돌잔치인 만큼 최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장소 선정에도 배려했다. 대부분 지방에 계시는 친척들은 주말에 집 근처 뷔페로 예약했고, 3040대 중심의 지인들은 회사 근처 뷔페로 예약했다. 혹시나 부담감을 갖지 않게 금일봉은 사절하기로 했다. 돌잔치 3주 전 친척에게는 전화통화를 했고, 지인에게는 초대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본 메시지를 받으시는 분들은 ‘오사모(오신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본인도 모르게 가입되어 있거나 가입 예정이신 분들입니다. 정확히 1년 전 큰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더욱 건강하게 돌아오게 된 건 여러분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 자축의 의미로 돌잔치를 준비하오니, 많은 ‘오사모’ 여러분들의 참석과 격려 부탁드리겠습니다.
일시 : 2015년 8월 25일(화) pm 6:30~9:30
장소 : 양재 엘타워 4층 디오디아 뷔페 디오 홀
p.s 한식/일식/중식/샐러드/즉석코너 등의 검증된 특급 뷔페와 생맥주 무제한 제공하지만, 금일봉/봉투는 사절! 따뜻한 격려의 마음만 받겠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돌잔치 날에는 15호 태풍 고니로 인해 아침부터 비바람이 몰아쳤다. 괜한 사람들 고생시키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도 됐지만, '어쩔 수없이 지금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시간에 맞춰 한 두 명씩 도착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매니저가 서프라이즈 케이크를 준비해줬다. 


하얀 생크림 케이크 위에 하나의 초가 꽂혀 있다. 홀로 있지만 외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촛불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마치 너무 빠르게 타오르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과 같다. 이 소중한 순간을 오래 지켜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촛불 너머로 학교 동기, 회사 동료, 모임 선후배 등의 모습들이 보인다. 대부분의 얼굴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박수를 치면서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무반주로 들리는 노래가 나의 마음에 더 크게 울린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눈물이 나오려고 하고 있지만, 애써 참으며 웃는다. 케이크 앞에는 아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내의 사랑스러운 시선이 느껴진다. 아내와 눈을 맞춘 후 나는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노래가 끝날 때쯤숨을 최대한 깊게 들이마셨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단숨에 숨을 내쉬었다. 촛불이 흔들거림을 뒤로하고 하얀 연기만을 남긴 체 사라졌다. 촛불이 꺼지자 박수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렇게 두 번째 돌잔치는 시작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
뇌수술, '제 2의 인생 계기'로 삼은 것


아내 몰래 준비한 PPT를 띄워놓고, 돌잔치 셀프 진행을 했다. 

이런 걸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까? 광고쟁이답게 파워포인트를 꾸몄다. 

나의 사랑스러운 삼 남매의 멘트와 함께 씨스타, 런닝맨, 아이유, 이경규 등 많은 연예인들의 축하 인사 영상으로 시작했다. 특히 마지막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할 때는 흔히 말하는 모두가 빵 터졌다. 다소 어눌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슬라이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발표했다.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 무엇인지, 두 번째 돌잔치를 왜 하게 되었는지, 뇌수술을 삶의 계기를 삼고 그로 인해 달라진 생각과 달라진 행동, 또 무엇을 느꼈는지 차분하고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돌잔치에서 빠질 수 없는 돌잡이에는 아내를 선택했다. 안치환의 <내가 만일> 노래방 MR이 흘러나왔다. 아내에게 서프라이즈 노래 선물하고 싶었다. 아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직 노래 시작도 안 했는데, 목이 메어 못 부를 것만 같았다. 간신히 눈물은 참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여기저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생기더니 순간 합창이 되었다. 노래로 나를 응원해준 것이다.


내가 만약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약 시인이라면 그댈 위해 노래하겠어
엄마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댈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 이런 나의 마음을
by 안치환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 무엇일까?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당장 내일 죽을 것처럼 열심히 살게 될까? 첫 번째 인생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살지 않을까? 내일도 어쩔 수 없이 돈 벌기 위해 내일도 출근하게 되지 않을까? 매 번 머리속으로만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까? 힘들어하지 않을까? 지나간 시간을 아까워하며 후회하며 살지 않을까?



번지점프에 줄이 없다면? 바닥으로 떨어져서 죽을 것이다. 다행히 줄이 있어서 떨어져도 안 죽는다. 몸무게가 무거운 사람일수록 더 밑으로 떨어지게 되고 떨어진 만큼의 반동을 받아서 더 오르게 된다. 삶의 무게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사람일수록 더 밑으로 떨어지게 되고, 떨어진 만큼의 반동으로 다시 오르게 되어있다. 내가 두 번째 인생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각자의 치열한 삶을 되돌아보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마치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돌잔치에 오신 분들께 부탁을 했다.

화면에 보이는 세 가지 포즈 중 박수 소리로 정한 포즈를 똑같이 따라 하겠다고.


결과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처럼 아내를 번쩍 들어서 입맞춤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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