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작년 가장 핫 한 연예인은 트로트 가수 이애란이다. 이애란은 가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노래 ‘백세 인생’을 부르는 모습이 담긴 캡처 화면으로 유명해졌다. ‘백세 인생’의 가사 중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부분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패러디가 되면서 소히 대박을 쳤다. 노래 가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이 가사를 쓴 김종완 작사가 친구의 부친상을 당해서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 ‘사람이 조금 더 오래 살 순 없을까’ 고민하다 만든 노래라고 했다. 사람은 죽는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톨스토이는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산다. 영원히 건강할 것처럼 살고, 영원히 나에게 시련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고 있다.
최근 다이어트 방법으로 간헐적 단식이 유행한 적이 있다. 2-3일에 한 끼 식사를 굶는 다이어트다. 간헐적(間歇的)의 사전적 의미는 "얼마 동안의 시간 간격을 두고 되풀이하여 일어나는. 또는 그런 것"이다. 가끔은 죽음에 대한 인식을 한다면 우리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하루에 소중함을 알게 되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이를 나만의 간헐적 시련이라고 명명해본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장인어른, 장모님은 고양시에 있는 추모공원 하늘문에 계신다. 1년에 2번 정도 인사드리러 간다. 6년 전 봉안 때 비어있던 화장장이 대부분 채워져 있다. 유골함에는 고인의 생년월일, 작고 일이 적혀있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들이 있다. 봉안단 내부에는 추모객들이 꽃, 고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액자, 성경책 등이 있다. 하늘문에 있는 순간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우리 어머니는? 아이들은? 아내는?'
'어쩌지? 어떡하지?'
암 치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심을 버리는 것'이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살 수 있다'라는 자기암시와 긍정적인 생각이 기본이 돼야 한다. 실제로 나는 작년 뇌수술 이후로 긍정적으로 살고 있고, 예전보다 더 건강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삶에 치여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물론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고, 나의 착각일 수 있겠다. 사실 착각이면 좋겠다. 나태해질 수 있을 때. 삶이 지치고 피곤할 때. 1년에 한 두 번 추모공원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 나만의 간헐적 시련이다.
자식이 있는 부모들은 누구나 내 자식이 아프면 마음이 아프다. 특히 첫째 아이일수록 더 마음이 아프고 어떻게 할지를 모르게 된다. 아이가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혹시 머리에 이상이라도 있을 까 봐 병원에 가서 X-ray 촬영을 하고, 신생아 예방접종이라고 작은 주삿바늘이 내 갓난아이 피부를 뚫고 지나갈 때 얼굴이 뻘게지면서 목에 힘주고 죽어라 우는 모습을 볼 때면 (하지만 실상 들리는 울음소리는 아주 작은 '응애~ 응애~'소리다) 초보 부모들은 백 명이면 백 명 모두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라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지금 이 시간에도 오늘내일하는 사람들이 많겠지?'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에 갈 때, 응급실에 있는 수많은 응급환자를 보고 있을 때, 응급실에서 입원하라고 판정 날 때, 입원할 병실이 없어서 응급실에서 마냥 대기하고 있을 때, 죽음에 대한 생각. 나만의 간헐적 시련이다.
나이 든다는 건 누구에게나 약속된 미래
지난 몇 번의 명절과 마찬가지로 이번 설에도 연휴기간의 TV는 정규 편성을 노리고 만들어진 파일럿(시범제작) 프로그램들로 채워졌다. 그중 MBC <미래일기>라는 프로그램이 재미와 감동을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간여행자가 된 연예인이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특별한 하루를 정해 살아보는 '시간 여행 버라이어티'로, 최근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등장하는 '타임워프'라는 소재를 예능에 접목시킨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축구선수 안정환은 80세 독고노인으로, 래퍼 제시는 58세 딸과 87세 엄마로 만난 모녀 관계로, 탤런트 강성연, 재즈 피아니스트 김가온 부부는 결혼 40주년인 77세 동갑내기 부부 관계로 출연했다.
안정환 : “다들 나만 두고 어디 갔니..?’”
제시 : “우리 할머니 같아. 어떡해.. 할머니랑 똑같아”
강성연 : “너무 늙은 거 아니야..?”
출연 연예인들이 거울을 통해 30 년 뒤 40년 뒤 본인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낯설어했다. 안정환이 가족사진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고 있을 때, 제시가 처음으로 87세 엄마와 마주했을 때, 강성연이 너무나 늙어버린 77세 남편과 마주 했을 때의 장면에서는 출연 연예인들이나 시청자들 모두 그 상황에 더욱 몰입하고 감정이입이 되었다. 재즈 피아니스트 김가온은 <미래일기> 방영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이 든다는 건 누구에게나 약속된 미래인데, 잠깐 먼저 다녀온 경험은 환성적이었습니다”고 소감을 밝혔다. MBC <미래일기>는 남은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알려주며,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나만의 간헐적 시련이다.
어떤 이들은 죽은 후에야 비로소 태어난다
책 쓰기 수업을 마친 후 대학 동기 부친상에 간 적이 있다. 그날 수업 때 Happy Rebirth to you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내용은 첫 번째 인생의 패인을 분석하고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였다. 발표 후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한 동기들과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하루에 삶과 죽음이 교차한 느낌이었다
니체는 "어떤 이들은 죽은 후에야 비로소 태어난다" 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떤 이들은 간헐적 시련을 통해서 비로소 태어난다"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