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현 Apr 23. 2016

뇌수술 후 통역이 필요했던 이유

말할 수 있다는 기쁨.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서는 사고의 수단이다. 우리는 못 느끼지만 읽기, 듣기, 말하기와 쓰기 등 여러 뇌 구조 가동시에 작동해야지만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한 것이다. 뇌 구조 중 하나라도 이상이 있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짧지만 한 달 남짓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뇌수술 직 후 상대방 말을 이해하는 것은 정상이나 말의 산출이 어려워졌다. 분명 머리 속에는 수많은 단어들이 생각나는데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고 입까지 연결이 안 되는 것이다. 

아 답답해 미치겠네


수술 직 후 병문안 오는 지인들한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디에서 쓰러졌는지?’ ‘병명이 뭔지?’ ‘수술 결과는 어떠한지?’ 설명을 해야 하는데, 어렵게 어렵게 나오는 소리는 “음….. 어…..” 하면서 손짓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나마 하루하루 지나면서 단어 한 마디씩 하는 것은 가능했다. 

"음…. LA…" 

"엄……. police…" 

재미있는 건 순간순간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우리말보다는 영어였다.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한국에 엊그제 온 재미교포와 다를 바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한동안 뇌수술 이후 나에게는 통역관이 필요했다.

오신랑 : "음….. LA……police……."
아내 : "남편이 작년 여름 LA에 대학원 연수 가서 류현진 경기도 보고 잘 지내다가 수업 도중 쓰러졌어요. 다행히 미국 경찰이 교실 안에 들어와 있었어요. 응급조치가 빨랐었죠. 참 다행이에요"

시간이 지나고 병문안 오는 지인들이 많아지면서 아내는 통역관에서 대변인 역할까지 했다.


오신랑 : "음… 수술…. OK……. After 2 week …… come back home"
아내 : "수술 전에는 종양 70% 제거가 목표였는데, 수술하면서 신랑이 잘 견뎌줘서 종양 제거 90% 되었어요. 나머지 10%는 방사선 치료로 제거할 수 있다 하고요. 병원에서 2주 후면 퇴원할 수 있을 거예요. 바쁘신데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 종일 병실에 있으면 답답하기 마련이다. 비가 안 오면 아내와 같이 밖으로 나가서 주차장 한 바퀴를 돌고 야외 휴게실에서 30분 정도 앉아있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휴게실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이문세의 휘파람 반주가 흘러나온다.

그때 떠난 여기 노을 진 산마루턱엔 아직도 그대 향기가 남아서


오신랑 : "자기 옛날 노래 가사는 다 기억난다. 신기하다그치?"
아내 : "정말 그러네"

아마 옛날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노래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면서 가사 한 줄 한 줄 적었던 추억들이 장기기억 속에 저장이 됐나 보다. 그 뒤로 병원에서 이문세, 변진섭, 이선희 등 8090 노래를 주로 들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동갑인 아내가 좋다. 아내는 노래를 같이 따라 불렀다. 가끔 가사를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자체적으로 콧노래로 대체하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날 병원에서 아내와의 추억이 생겼다.


내 머리 속 종양은 왼쪽 귀와 왼쪽 눈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마 좌반구 전두엽 부분이었을 텐데 이 부분에 손상 시 나타나는 증상으로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거나 떠듬떠듬 거릴 수 있다. 말의 이해는 정상이나 말의 산출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나는 비록 일시적인 경험이었지만 평생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의 마음을 늦게 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여러분 중에도 주변 인중에 말이 다소 어눌하고 답답하게 느껴진 사람이 있지 않은가?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대화하는데 이상이 없으면 정상인이다. 설령 대화가 불가능하더라도 글이나 수화 등으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지 않은가? 


말할 수 있다는 기쁨.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