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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현 Apr 23. 2016

방치된 스트레스

부정적인 사고의 악순환이 원인이었다.

1년에 한 두 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때가 있었다


뇌종양 판정받기 전, 나에게는 전조 증상이라고 느껴질 만한 것이 없었다. 흔히 전조증상이라고 말하는 한쪽 눈의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지도 않았고, 한쪽 팔 또는 다리 움직임이 불편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간혹 '1년에 한 두 번'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때가 있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있거나 클라이언트에게 제안서 제출이 얼마 안 남았을 때였다. 지끈지끈 아플 때면 양손으로 관자놀이 마사지하면 잠시 후에 괜찮아졌다.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다수의 대한민국 직장인이 겪는 두통이라고만 생각했다. 


병원에서는 뇌종양은 정확한 원인이 없다고 한다. 내 몸의 이상 증상이 있는데, 원인을 모르고 당한다면 억울하지 않은가? 클라이언트 브랜드를 진단하고 문제점을 찾고 문제 해결에 가장 적합한 솔루션을 찾아주는 것이 내 직업이지 않나? 정확한 원인을 찾기 힘들겠지만 심증적 원인을 찾기 위해 지난 시간들을 되살펴보았다. 프로바둑기사들이 장시간 대국을 마치고 복기하듯이, 40여 년의 내 인생을 복기해보니 원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로움이 혼자 있는 고통이라면,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다.
철학자 틸리히


외아들로 자란 유년 시절, 집에 홀로 있는 시간이 꽤 많았다. 부모님이 맞벌이하셨기 때문에 하교한 후 평균 6시간을 혼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혼자 노는 것이 익숙했다. 혼자 노는 것이 편했다. 간혹 친척 동생들이 오면 재미있게 노는 것도 잠시일 뿐 금세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동생들이 언제 집으로 돌아가지?'라는 생각도 했었다. 혼자 노는 방법도 점점 진화했다. 어릴 때에는 로봇이나 자동차 장난감으로 역할 놀이를 했다. 중학교 때는 쓰레기통 뚜껑을 방문 상단에 거꾸로 붙여놓고, 탁구공으로 자유투 연습을 했다. 사각형 밥상 식탁을 한쪽 벽에 붙여놓고, 공책을 탁구라켓 삼아 탁구공을 벽에 튕기며 놀기도 했다. 이렇게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한두 시간 금방 지나갔다. 


성적과 아무 상관없이 오직 인기투표 다수결로 선정되던 학창 시절에는 반장, 과대표를 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과 친했지만 원래 낯을 가리는 성격이어서 사람하고 사귀는 것이 오래 걸렸다. 대학생 때는 '나랑 상관있는 사람들만 보면 되지. 굳이 상관없는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할 필요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생각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한 테이블 4명 있을 때는 대화를 주도하는 편이었지만, 5명 이상의 인원이 있을 때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말할 텐데'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것을 불편해했고, 내 생각을 스스로 표출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점점 과묵해졌다.


너 우울증 초기 증세 같다


서울시청 광장을 붉은 악마로 뒤엎고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 짝짝짝"을 외치던 월드컵이 열린 2002년. 난 온라인 광고 미디어 렙사에서 대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 처리하는 업무가 많았다. 미디어 플랜 및 바잉 등 광고 업무는 기본이고 외부 미팅, 내부 회의, 세금계산서 발급부터 어음 관련 은행업무. 심지어 사업자등록증 주소지 이전하러 법원에 간 적도 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지금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 일을 해보랴?'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광고 비전공자여서 이런 두루두루 겪은 경험들이 언젠가는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막연한 생각이었지만 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대표님이 날 조용히 부르더니 이렇게 얘기했다.


"오대리, 너 우울증 초기 증세 같다."
"제가요?"
"어. 나랑 같이 정신병원에 상담받고 오자"
"에이~ 사장님도 농담이 심하시네요."
"너, 우리 아내랑 증상이 비슷해 보여"
"에이~ 우울증이요? 저 아니에요. 하하"


그 당시 정신병원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미친 사람'이 떠올랐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이미지가 떠올랐다. 사람들 가둬놓고 때리고, 몽유병 환자처럼 밤에 돌아다니고, 횡설수설하거나 넋 놓고 벽을 보고 있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들이었다. 결국 사장님 손에 이끌려 삼성동에 있는 신경정신과에 갔다. 원장님과 상담할 때만 해도 '내가 우울증이라고? 아니지'라는 생각이 확고했다. 상담을 마친 후 정확한 증상 파악을 위해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수십 여 개의 질문지가 담긴 설문지를 작성하는 동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 이거 내 얘기잖아' 20분 넘게 작성하는 동안 설문지에 빠져든 느낌이 들었고, '내가 우울증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우울증은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8주간의 집단 치료를 받았다. 만약 그때부터 꾸준하게 나 스스로를 관리했었다면 '뇌종양'이라는 병이 나에게 오지 않았으리라.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면 어쩌지...'

'시간도 없는데 후배에게 맡기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것이 더 빠르니까....'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없고 사람도 없고.. 아 밤새서 해야겠다.....'

'이번 프로젝트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인데, 다음 프로젝트는 더 잘해야 되는데...'

'왜 나에게 일이 몰리는 걸까? 내 업무 방식이 잘못된 건 아닐까?....'


걱정은 또 다른 불안을 낳고 불안은 또 다른 불안을 낳고. 이런 부정적인 사고의 악순환으로 살았다. 부정적인 사고를 끊으려는 시도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패턴이 결국 암으로 내게 다가온 것이다.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다.
계속 움직이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미국 작가 윌 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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