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종현 Apr 26. 2016

6개월 전에 멈춘 노트북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2014년 8월 뇌종양 수술 후 6개월 만에 회사에 복직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광고 업무가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인지라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다. 그리고 AE의 필수 덕목에 하나인 대면 커뮤니케이션에 아직까지는 부담이 있다. 병원 주치의 교수님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상생활하는 게 회복에 도움될 수 있다고 하시면서 복직에 찬성했다. 
6개월 만에 출근길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오랜만에 보는 내 자리. 책상과 의자, 서랍장, 책꽂이, 노트북 등 책상 위에 내 물건들 모두 6개월 전 그대로였다. 책상을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 전원을 켰다. 비밀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당황스럽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몇 가지 비번의 패턴을 입력했지만 허사였다. 30분 정도 매달렸다. 결국 포기하고 근처 서비스 센터에서 비밀번호를 reset 했다. 


6개월 만에 로그인 한 노트북에 바탕화면은 6개월 전 그대로였다


 ‘바탕화면에 있는 이 파일이 뭐였지?’ 회사 업무 관련 문서와 대학원 과제의 문서들로 마구 뒤엉켜져 섞여있었다. ‘저 때는 굉장히 바쁘게 살았었구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여러 사무기구와 출력물들 사이에 편지 한 통이 있었다. 

수술 3개월 전 2014년 봄에 쓴 아내의 편지였다. 편지의 내용 중 8-90%가 남편에 대한 불만이었다. 


“아이 셋은 혼자 키우는 게 아니다” 

“평일에는 늦게 온다 하더라도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

“음식물 쓰레기와 화장실 청소만이라도 도와달라”라는 류의 내용이었다. 


지금은 제 2의 신혼처럼 각시 얼굴만 봐도 좋은데, 저때는 왜 그랬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살고 있다. 
누군가는 열심히 살고,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살고, 누군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살고 있다.
회사를 퇴사하지 않는 이상 6개월의 휴식을 갖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내 경우는 병가 휴직이었지만 막상 6개월을 쉬어보니 변하는 것도 있고 변치 않는 것도 있었다. 물성적인 것은 변치 않았다. 그때 그대로 제 자리에 있었다. 물성적인 건 그래도 있지만 非물성적인 것은 변했다. 나의 기억이라던지. 아내를 생각하는 나의 생각이라던지. 이것들은 충분히 변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 변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단정 짓지 말자. 생각 없이 판단하지 말자.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들이자.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역경은 당신에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할 용기를 준다
-앤디 그로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