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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현 May 03. 2016

아빠랑 결혼식장 갈 사람?

가족 인원수에 따라 결혼식 초대에 대처하는 방법

자식 한 명 일 때 1개의 Client
두 명 일 때 4개의 Client
세 명 일 때는 10개의 Client를 담당하는 AE와 같다고 생각해


결혼 12년 차이자 세 아이의 40대 아빠가 '친구' 결혼식의 초대를 받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십중팔구 결혼이 늦었거나 한 번 더 했거나 둘 중 하나이다. 친구 결혼식은 당연히 축하해주러 간다. 가끔 회사 동료나 후배 결혼식에 초대받는 일은 종종 있는데 이럴 때는 상황에 따라 결정한다. 안면이 있는 사람은 축하해주러 가는 편이고, 혹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못 간다면 인편에 축의금이라도 전달한다. 이름만 알거나 약간 애매한 관계의 사람의 결혼식이라면 인편에 축의금을 전달하거나 나중에 만나면 구두로 축하 인사를 전한다. 지난 결혼 12년을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은 인원수에 따라 결혼식 초대장에 대처하는 방법은 달라졌다. 


3인 가족, 온 가족 모두 나들이하는 날

할리우드 외국 배우가 늘씬한 아내와 함께 아이와 걷는 모습이 결혼 전부터 나의 로망이었다. 친구 결혼식 날이 곧 나의 로망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아내는 아침 일찍부터 바쁘다. 샤워하고, 기초화장에, 색조화장에, 드라이까지, 풀메이크업 민폐 하객 준비를 한다. 아이도 모자에 날개 달린 가방에 알록달록 웃을 입고 준비를 한다. 그때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우리 아내 이쁘죠?'라는 팔불출 자랑질을 하거나, '우리 가족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요'라는 눈물 나도록 행복함을 자랑하고 싶을 때였다. 아이 하나만 키울 때는 친구 결혼식도 자주 있을 때였고, 세 식구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결혼식장 근처에 공원이나 박물관이 있으면 패키지 당일 여행을 하곤 했다. 그러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젊은 신혼부부의 주말 데이트 덕분에 아이는 피곤한지 금세 잠들었다. 그때는 아이도 어렸고, 엄마 아빠도 어렸다.


4인 가족, 이 참에 모여서 외식하는 날

3년 후 태어난 둘째 아이. 내 나이 30대 중반. 월화수 목금금 금. 평일에는 회사 일로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새벽 퇴근을 당연하게 생각할 때였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이 많았다. 가정을 돌보는 마음보다 회사 후배를 돌보는 마음이 클 시기였다. 그러다 가끔 받는 결혼식 초대장은 호재였다. 우리 가족의 외식 기회였다. 
'잘 됐네. 이 참에 가족끼리 모여서 외식하면 되겠네' 
이 당시에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한 달, 1년 365일 내내 육아에 지친 아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가족끼리 모여서 주말에 밥 한 끼 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어린아이 일 뿐인데 형이라는 이유만으로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첫째 아이, 커다란 눈망울로 아무런 이유 없이 울고 있는 둘째 아이, 잘 나가던 여인이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가 되어버린 동갑내기 아내. 그때는 아이들은 여전히 어렸고, 엄마는 외로웠고 아빠는 철이 없었다.


5인 가족, 출발 전부터 전쟁터가 따로 없다

4년 후 태어난 셋째 아이. 셋째가 태어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친척 결혼식이 아니면 5인 가족이 움직이는 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출발하기 전부터 전쟁터가 따로 없다.

"애들아, 빨리 옷 입어"
"애들아, 늦었어. 빨리빨리"
셋째 아이는 다행히 딸이라 오빠들보다는 낫긴 하는데, 아직은 애기다. 엄마 껌딱지이다. 첫째와 둘째는 한참 티격태격 말싸움을 할 때다. 외아들이었던 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아니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싸운다. 딱 초등학생 수준이다. 하지만 언제나 본인이 가장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빠, 형아가 나한테 메롱이라고 했어"
"네가 먼저 그랬잖아"
"내가 언제? 형이 먼저 그랬잖아" 
둘째가 목에 힘주고 소리치자, 첫째가 동생을 째려본다.
"아빠, 형아가 나 째려봤어"
"네가 먼저 그랬잖아"
"내가 언제? 형이 먼저 그랬잖아"
상황이 이러다 보니 결혼식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운이 빠진다. 축의금 내고 식권 받아서 밥 먹고 주차권에 도장 찍고 신랑(또는 신부)에게 눈도장 찍고 자리에 일어날 생각뿐이다. 이 모든 일을 마치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후배들한테 종종 들려주는 비유가 있다. "자식이 한 명 일 때는 1개의 Client, 두 명 일 때는 4개의 Client, 세 명 일 때는 10개의 Client를 담당하는 AE와 같다고 생각해" 
이 말인 즉, 주말에 아빠가 아이 1명을 케어하면 엄마는 6개의 Client를 아빠에게 넘겨주는 효과이고, 아빠가 3명을 동시에 케어하면 엄마는 리프레쉬 휴가를 받는 느낌일 것이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이 사실을 깨달은 후 회사 동료나 후배의 결혼식 초대장을 받으면 세 아이 중 1명만 데리고 간다. 


작년 일이었다. 하루에 두 번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예식 시작이 오전 11 시대, 오후 5시로 간격이 있었다. 

'누구를 데리고 가지?' 


누구를 데리고 가느냐에 따라서, 오후 일정 계획이 달라질 수 있다. 
'첫째 아이는 어렸을 때 많이 다녀봤고, 막내는 아직은 어리고, 둘째 아이랑 가야겠다'

사실 둘째랑은 단둘이 시간을 보낸 적이 손을 꼽을 정도였다. 중간에 영화 한 편을 보고 근처 서점에 갈 계획을 세웠다. 전날 저녁 둘째 아이에게 살짝 귀띔해줬다. 

"아빠랑 내일 결혼식장 가서 맛있는 밥 먹고, 재미있는 영화도 볼 꺼야"
"으잉? 왜 나야?"
"형은 어릴 적에 아빠 엄마랑 많이 가봤었고, 이제 너 차례야. 아빠랑 데이트하기 싫어?"
"왜 내가 가야 되냐고?"
다음 날 아침, 결혼식장 가는 지하철 안에서도 물어본다.
"왜 내가 가야 되냐고?"
'아... 이 녀석을 한 대 때려?'
"아빠가 채운이랑 데이트하고 싶어서 그러지. 채운이는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이야"
다행히 어르고 달래서 하루 일정을 마쳤다. 오전 9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저녁 8시에 도착한 강행군이었다. 집에 도착하자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눈 뜨자마자 형에게 아빠와의 데이트를 자랑하는 귀여운 녀석이다.

난 채운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채운이가 갓난아기였을 때, 난 가정을 돌보는 마음이 가장 부족했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독 작은 체구로 태어난 것이 내 잘못인 것 같았고
둘째라는 이유만으로 돌잔치 사진이 없는 것도 내 잘못인 것 같았고
엄마가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백일 남짓 때 어린이 집에 맡겨진 게 내 잘못인 것 같았다.

'비록 영화 보고 들린 서점에서 자기 책 사 준다고 짜증은 냈지만, 비록 장당 15,000원짜리 캐리커쳐를 아빠 먼저 하면 한다고 해서 돈이 두 배로 들었지만, 하루 종일 아빠와 같이 다니느라 고생 많았어. 채운아 고마워'

다음 결혼식장 파트너도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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