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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현 May 11. 2016

매일 아내의 정성을 마신다

면역력 강화에 좋은 최고의 식이요법, 녹즙

뇌종양 수술 이후 아내가 나에게 녹즙 마시는 것을 권했다.
"자기, 매일 아침저녁으로 녹즙 마셔라"

"녹즙? 아침에 풀무원 아줌마가 사무실에 배달하는 거?"
"아니, 내가 녹즙기로 직접 갈아줄게. 자기는 마시기만 하면 돼"
"갑자기 녹즙을 왜?"

"내가 여기저기 찾아봤는데, 암 환자에게 좋데"


암 환자에게 좋다는 말에 마시기 시작한 녹즙. 처음에는 마시는 게 참 힘들었다. 일단 냄새부터 고약했다.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냄새였다. 역시 맛도 씁쓸하다. 약간의 비위 쏠리는 맛이다. 시중에서 파는 녹즙 120ml 도 마시기 힘든데, 아침저녁으로 생녹즙 500ml 이상 마셔야 한다니, 이런 고역스러움이 따로 없다. 맥주 500ml라면 단숨에 비울 수 있었을 텐데, 생녹즙 500ml을 비우려면 자연스럽게 10번 이상 끊어서 마시게 된다. 한쪽 손으로 코 막고 얼굴에 잔뜩 인상을 쓰면서 마시게 된다. 그래도 꾸역꾸역 마셨다. 이 고역스러운 녹즙을 마셔주는 것이, 나의 특권인 양 생각했다

생녹즙 500ml 마시는데 5분 정도 소요됐다

녹즙은 3~7가지 녹황색 야채를 뿌리, 줄기, 잎까지 모두를 녹즙기에 갈아서 찌꺼기를 걸러낸 즙으로, 비타민, 미네랄과 플라보노이드 등 여러 식물성 화합물은 면역 증강, 세포주기의 억제, 세포의 분화 촉진, 암세포의 전이 억제, 신생혈관의 억제, 세포자살(apoptosis)의 촉진 등 여러 작용을 통해서 항암 작용을 나타낸다. 비록 항암작용을 하지 않더라도 식물 속의 여러 물질들은 체내 환경을 변화시켜 자연치유력을 증강시킴으로써 암을 스스로 물러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녹즙을 중심으로 한 식이요법을 통해서 암 예방한 사례가 많다고 한다.

가정에서 매일 녹즙 1회 섭취량 500ml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아내가 케일, 컴프리, 당근, 아욱, 신선초, 브로콜리, 돌미나리, 알로에 등의 녹즙 재료를 유기농 야채 매장에서 직접 사 왔다. 양이 너무 많아서 아내 혼자 장을 보기에는 힘들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1주일에 아침, 저녁으로 먹는 녹즙량을 계산해서 매주 화요일에 필요한 분량의 재료가 배달되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녹즙 재료들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양이 많다 보니 재료 씻는 시간만 해도 30분 이상 걸린다. 녹즙기에 재료 하나하나씩 넣어서 간다. 많은 양을 넣다 보면 녹즙기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찌꺼기에 모터에 걸릴 수 있다. 말 그대로 한 땀 한 땀 즙을 낸다. 500ml라는 녹즙량을 받기 위해서는 40분 이상 걸린다. 초반에 사용한 녹즙기가 시간이 오래 걸리고 6개월 만에 모터가 고장 났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돌려대니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그래서 모터가 두 개 달린 엔젤 녹즙기로 교체했더니 녹즙 내는 시간도 1/2로 줄어들었다. (녹즙기 고를 때는 튼튼하고 모터가 두 개 달린 것이 가장 좋다) 마지막으로 녹즙기에 남겨진 찌꺼기를 분리하고 깨끗하게 설거지를 해서 말려야 한다. 녹즙기를 분리하고 부품 하나하나 닦고 씻는데 최소 20분 이상 걸린다. 회사에서는 녹즙을 못 마시기 때문에 한 번 마실 때 500ml씩, 아침저녁으로 토털 1,000ml 의 녹즙을 마신다. 가정에서 500ml의 녹즙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90분이라는 아내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아침저녁이면 3시간인 셈이다.

많은 녹즙 재료들을 깨끗히 씻는 시간만 30분 이상 걸린다


이 녹즙이 내 몸속 암세포의 변형을 막고,
내 몸속 면역세포에게 힘을 주리라


녹즙을 마실 때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면서 마신다. 일종의 자기암시인 셈이다. 난 매일 녹즙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정성을 마신다. 내가 마시는 녹즙이 아내의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허투루 마실 수는 없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초반 고역스러운 녹즙을 마셔주는 것이 특권인 양 생각했던 사실이 매우 부끄러웠다. 창피했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속으로 깊이 반성했다.


뇌종양 수술 이후부터 지금까지 마시고 있으니 근 20개월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신 셈이다. 며느리가 고생한다며 녹즙기에서 즙을 내리는 것을 어머니가 하실 때도 있었다. 큰아들이 자기도 하고 싶다며 즙을 내릴 적도 있었다. 간혹 녹즙을 거를 때면 아내는 나에게 굉장히 미안해한다. 아들이 녹즙을 거를 때면 어머니는 매우 안타까워하신다. 속으로는 며느리를 원망하실지도 모른다. 나 자신 조차도 수술 직후의 마음이 흐려진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다스려야겠다.


오늘부터 녹즙 마시기 전 외쳐야겠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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