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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현 May 31. 2016

5인 가족 LG 트윈스 원정 응원단

'프로야구 개막 33년' 만에 잠실이 아닌 타 야구장에서 직관하다

LG 트윈스는 1994년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 신인 3인방의 신바람 야구로 우승한 이래 지금까지 우승을 못 하고 있다. 1994년은 내가 대학교 2학년이었고, 지금은 졸업 후 광고쟁이 15년 차니까 오래되긴 오래됐다. 옆집 두산팬들은 마치 서울의 주인인양 큰소리치고 있었고, 넥센은 LG만 만나면 어벤저스처럼 공격과 수비 능력치가 굉장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이용규, 김상현, 서건창, 박병호, 박경수, 김태군, 심지어 올해 정의윤까지 LG를 떠난 선수들은 다들 커리어 시즌을 보내면서 LG 골수팬들은 '탈 G효과' 'DTD(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라는 조롱과 멸시에 자연스럽게 내성이 쌓이고 있었다. 그러던 2013년 김기태 감독의 '형님 리더십' 덕분에 LG가 가을에도 야구하게 됐고, 2014년에는 김기태 감독의 사임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양상문 감독이 기적같이 4위에 안착하는 데 성공하면서 2년 연속 LG팬들을 기쁘게 했다. 

출처 : 위키피아
2014년 8월 21일 LG 트윈스가 처음 4위로 올라섰고, 
2014년 8월 25일 나는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처음 수술대로 올라섰다. 


수술대 위에서 전신마취를 하고 양 팔에 주삿바늘을 꽂고 머리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키는 등의 수술 준비 3시간, 왼쪽 측두엽에서 100도 가까이 두 개를 절개하고 (어떻게 자른지는 모른다) 나를 깨운 후 오른손을 앞으로 움직이라고 하고, 오른발을 위로 들어보라고 하고, 모니터에 떠 있는 그림이 무슨 그림인지 물어보기를 2시간 동안 반복한다. 머릿속 종양을 제거하면서 최대한 신경을 살리기 위해 행동, 인지하게 하는 것이다.(이것을 의학용어로 '개두술'이라 한다) 절개 부위를 다시 접합하고 꼼꼼히 꼬매고 머리 고정 장치를 해체하기까지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야 하는데, 난 야구 중계를 보기 위해 1인실을 사용했다. 그 당시에는 건강 제외하고는 걱정할 게 없었다. 아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돈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졌고 인생에서 돈이란 아무런 의미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6인 실과 1인실 비용 차이에서 오는 부담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었다. 매일매일 야구를 보면서 지루한 병원생활을 달랬다. 야구가 없는 월요일이나 비가 와서 우천 취소되는 날은 하루가 1주일보다 길게 느껴졌다. 퇴원 후 방사선 치료를 위해 매일매일 병원을 다녀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방사선과 선생님 두 분이 야구팬이었다. 여선생님은 SK팬, 남자 과장님은 삼성팬이었는데, 전날 야구 결과에 따라서 방사선과 선생님과의 농을 던지는 상황이 기다려졌다. 2014년 11월 11일. 삼성의 통합 우승 4연패와 함께 내 27회의 방사선 치료도 끝났다. 어쩌면 5분의 짧은 방사선 치료 시간이었지만, 27회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요인이었는지도 모른다. 


2015년 원정 야구 응원을 위해 카니발 9인승으로 바꾸다


"자기, 뭐 빠진 거 없어?"

"(LG 트윈스 마킹) 유니폼, (LG 트윈스 노란 응원) 수건, (LG 트윈스 응원용) 막대 풍선, (LG 트윈스 응원용) 작은 방망이, (LG 트윈스) 부채, 선글라스, 선크림은 챙겼고, 애들 더우니까 아이스박스에 얼음물이랑 음료수 챙겼고 홈런볼, 포카칩, 뿌셔뿌셔 등 아이들 먹을 과자도 있고 우리 마실 커피는 앞에서 사면되고 나머지는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서 사면될 것 같아"
"오케이! 출발하자"

아침 일찍부터 5인 가족 짐을 싸느라 바쁘지만 마음은 이미 저 멀리 부산에 가 있다. 그것도 사직구장에!


뉴 카이런 2.0. 예전 직장에서 쌍용자동차 광고 대행을 할 때 구입한 차였는데, 그 당시만 해도 우리 아이가 세 명이 될 줄은 몰랐다. 아이들 덩치가 점점 커지기도 하고 가족여행 가려면 짐이 한보따리 되고 고민하던 차에 2년 연속 LG 트윈스의 가을야구를 경험한 나는 넓은 차로 교체하고 싶어 졌다.  어머니까지 기본 6명이 탈 수 있어야 하고 공간도 여유로와야 하고 세련된 외관의 차를 고민하던 차에 카니발 9인승으로 낙점했다. 더욱이 회사에서 현대/기아차 구매 시 일부 할인 지원도 받을 수 있어서 최상의 구매 조건이었고, 카니발 9인승은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그래서 지금도 시골 내려갈 때면 굳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된다)


"얘들아, 저기 저 막히는 차 들 좀 봐봐"
"아 되게 길다. 근데 아빠 우리 차는 왜 이리로 가?"
"하하하하"
"아빠 왜 웃어?"
"우리 차는 버스전용차로 이용할 수 있는 차란 말이지. 우리 차는 부산에 빨리 갈 수 있어. 좋지?"
"네~ 아빠"

좋다고 대답한 아이들은 30분이 지나자 금세 지루해한다. 음료수랑 과자로 때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카니발에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LG 트윈스 응원가를 틀고 볼륨을 높인다.


"무적 LG 박용택 워어 어어어어 워어 어어어어 무적 LG 박용택 워어 어어어어 워어 어어어어"
"만나서 반갑습니다 LG 오지환입니다 안타 날아갑니다 준비되셨습니까?"
"오오오! 이병규~ LG의 이병규우우 안타! 엘지의~ 이병규우~ 이병규 안타를 날려라~ 안타"
"(짠짜짜짜자짠) 안타 날려라! LG 정성훈 안타 날려라! LG 정성훈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 날려라아아 무적 LG 정성훈 (정성후운~)"

우리 가족은 달리는 차 안에서 LG 트윈스 선수 응원가 떼창 한다.

2015년 5월 22일 LG vs. 롯데 20:12 LG 승
2015년 5월 23일 LG vs. 롯데 11:19 LG 패
2015년 5월 24일 LG vs. 롯데 3:10 LG 패

'프로야구 개막 33년' 만에 잠실이 아닌 타 야구장에서 그것도 한번 가보고 싶었던 부산 사직구장에서 직관한 3연전 결과다. 유독 3연전 내내 초반부터 타격전으로 이어졌는데 5회 이전에 승부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3시간이 넘는 야구 경기 내내 집중하는 게 불가능했는데, 다행히 5회 이후 LG 패색이 짙었다. 덕분에 경기장에 일찍 빠져나와서 부산 광안대교를 배경 삼아 야식 먹거리 투어를 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잠실보다 가까운 수원 LT 위즈 파크에 5인 가족 LG 트윈스 원정 응원을 다녀왔다. 


올해는 작년에 못 간 경기장에 가 볼 생각이다. 

2016년 6월 10일~12일 한화 이글스 파크 대전 3연전
2016년 6월 28일~30일 기아 챔피언스 필스 광주 3연전
2016년 7월 5일~7일 삼성 대구 라이온즈 파크 3연전
2016년 7월 8일~10일 롯데 자이언츠 사직구장 부산 3연전
2016년 7월 29일~31일 NC 다이노스 마산 3연전

이때는 부디 양상문 감독과 이천 트윈스의 젊은 영건들이 9회까지 끈끈한 신바람 야구를 보여주길 바란다. Again 1994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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