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8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348장 — “이름 없는 노래, 기억 없는 새벽”
---
하늘은 더 이상 붉지 않았다.
폭발 이후, 수백 개의 차원 틈이 무너진 그 자리에, 고요한 안개가 내려앉았다.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기억과 망각이 겹쳐진 파편들이 부유했다. 누구도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었으나, 단 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었다.
세란이 살아 있었다.
그녀는 무너진 공허의 중심에서 나왔고, 등에 새겨진 기억의 문장은 이제 흐릿한 불빛으로 맥박이 요동쳤다. 하늘의 뼈는 완전히 침묵한 상태였고, 빛 대신 묵직한 무게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세란은 그 무게를 온몸으로 끌어안은 채, 허물어진 기억의 계곡을 걸었다.
그녀의 걸음은 더디었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니할과의 충돌은 그녀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증오도, 승리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깊은 이해의 흔적이었다.
그가 망각을 선택한 이유.
그녀가 기억을 껴안은 이유.
그 사이엔 불가능한 화해가 있었고, 부정할 수 없는 연민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전쟁의 진짜 끝이었다.
세란은 길고 잿빛의 언덕 위에 앉았다. 먼 하늘 저편, 깨진 별무리들이 재편성되고 있었다. 은하의 줄기가 끊긴 자리에서 다시 빛이 솟고 있었고, 그 빛은 마치 잊힌 문명들의 숨결처럼 살아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바람결 속에서 낮고 오래된 멜로디를 들었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으나, 분명 존재했던 노래. 그녀조차도 처음 듣는 선율이었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노래는 언어가 없었고, 이름도 없었다.
그러나 그 멜로디는 과거와 현재를 잇고, 모든 상흔을 감쌌다.
세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녀의 등 뒤로 부드러운 기척이 다가왔다.
루엔이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왼손에는 망가진 시간 조율기의 잔해가 들려 있었다.
그는 말없이 그녀 옆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그 침묵은 억지로 깨지지 않았다.
“살아있었구나,” 세란이 먼저 말했다.
“네가 깨우지 않았다면, 모두 사라졌을 거야,” 루엔은 낮게 웃으며 대답했다. “넌 그를 죽이지 않았지.”
“죽음이 구원이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
니할에게 필요한 건 파괴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머무는 일이었으니까.”
세란의 말에 루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낡은 종이 조각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예전, 망각 전쟁이 일어나기 전, 아르카디아의 아이들이 서로 주고받던 기억의 편지였다.
“이건 니할이 남긴 거야. 네게 주라고 했어.”
세란은 그 종이를 받아 들었다. 종이 위엔 단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번엔… 기억을 선택할 거야.”<
그녀는 오랜만에 조용히 웃었다.
하늘 위, 무너졌던 차원들이 천천히 봉합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의 틈 사이로, 새로운 생명들이 움트고 있었다. 망각의 시대는 끝났고, 기억의 세기가 도래하려 했다.
그러나 세란은 그 중심에 서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루엔이 물었다.
그녀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아직 이름조차 없는, 잊힌 행성들이 있지. 나는 그곳을 돌며 오래된 기억들을 수습할 거야.
버려진 노래들을 다시 엮고, 사라진 이야기들을 다시 쓰겠지.”
“그게 너의 새로운 전쟁이겠군.”
세란은 미소 지었다. “이제 전쟁이 아니라, 회복이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의 뼈는 이제 아무런 빛도 내지 않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무기가 아닌 기록의 사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 앞에 잿빛 구름을 뚫고 작은 새 하나가 날아들었다. 깃털은 반쯤 타 있었고, 몸은 앙상했지만, 그 눈동자엔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세란은 팔을 뻗었고, 새는 주저 없이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가자,” 그녀가 말했다. “다시, 쓰러진 시간들 위로.”
멀리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수천 년의 공허와 침묵을 뚫고,
이름 없는 노래를 타고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