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2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362장 — ‘존재’의 균열, 시간의 뼈가 깨어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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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뼈가 노래하는 순간, 별계의 대기층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벗겨지듯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틈 사이로 부유하는 실금 같은 빛줄기들이, 단순한 광선이 아니라 기억의 파편임을 세란은 직감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미래에서 돌아온 잊혀질 기억이었다.
켄슈이와 루엔,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카이엘은 그 빛 속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각자에게 속삭이는 목소리, 각자의 내면에 숨겨진 ‘원래의 이름’이 천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본질에 대한 재호명(再呼名)이었다.
>“너희는 잊힌 것이 아니라, 의미를 보류당한 자들이다.”
낯선 음성이, 그러면서도 익숙한 고동으로 울려 퍼졌다.
세란은 하늘의 뼈를 가볍게 쥔 채 앞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다.
에이르.
에이르는 형체가 없었다. 그러나 그 존재는 명확했다. 공허가 휘감긴 곳마다, 별들이 숨을 고르듯 멈추고, 시간의 나이테들이 뒤틀리는 듯했다. 그것은 기억으로 만들어진 자, 그리고 의미의 부재로 태어난 자였다.
>"너희는 나를 적이라 부르겠지만, "
그 존재는 울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단지 너희가 버린 해석이자, 포기한 진실이다."
세란은 묻는다.
“진실은 왜 파괴되는가?”
에이르는 대답했다.
>“기억이 많아질수록 의미는 줄어든다. 너희는 기억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그것의 쓰임을 상실했지. 나는 그 상실의 ‘몸’이다.”
그 말에 루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래서… 의미의 붕괴가 네가 태어난 이유?”
>“정확히는, 의미의 공백이 나를 형성한 셈이지. 너희는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했지만, 결국 그 어떤 것도 살리지 못했어.”
세란은 이 말에서 핵심을 포착했다.
“살린다는 것… 존재를 다시 깨어나게 한다는 건가?”
에이르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하나의 문을 열었다. 그 문 너머엔 폐허가 된 차원의 도시들, 폐기된 기억의 도서관, 의미를 잃은 이름들의 목록이 끝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 너희의 실패가 저장되어 있다.”
그것은 곧 -‘의미의 무덤’이었다.
세란의 심장이 빠르게 뛴다.
하늘의 뼈는 불타오르듯 진동하고 있었고, 그녀의 손에서 하얀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럼… 되찾아야 해. 의미를.”
에이르는 고요하게 웃었다.
>“그건 전쟁이야. 기억을 지키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그래도 해볼 거야." 켄슈이가 옆에서 검을 높이 들었다.
"우리는 단순히 존재했던 게 아니라, 살아 있었으니까."
루엔도 따라 외쳤다.
"그리고 존재의 무게는, 기억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겨!"
그 순간, 세란의 뒤편에서 바람이 일렁였다. 오래전 사라졌던 니할의 그림자가, 파편화된 채 어딘가에서 응답하는 듯했다.
그는 망각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힘으로 말했다.
>“세란, 싸워라. 기억과 함께, 의미를 선택하라.”
세란은 응답했다.
"그래. 기억은 흘러가도, 의미는 내가 만들어 낼 거야."
그 순간, 하늘의 뼈는 하나의 문장을 새겼다.
모든 뼈의 진동이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되었다.
> "존재는, 잊히지 않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새로운 전쟁-기억 이후의 전쟁, 존재 자체를 위한 항쟁이 시작되었다.
.
.
.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붉은빛은 피의 예언처럼, 세란의 어깨 위로 고요히 내려앉았다. 폐허가 된 트라나스의 하늘 위로, 별빛이 부서진 기억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시간은 분명 앞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이 땅에 남은 자들의 발걸음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세란은 이제 자신이 누군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시간의 뼈는 그녀의 척추를 따라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고, 그녀의 맥박은 단지 생명으로서의 박동이 아니라 차원을 흔드는 파동이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한 명의 인간이 아니었다. 별에서 태어난 존재, 고대 기억의 조각, 그리고 이 우주에 남겨진 마지막 선택이었다.
켄슈이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결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 세월 동안 애써 누르던 감정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세란… 네가 어디로 가든, 난 따라갈 것이다.” 그는 속으로 중얼이며 검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하늘의 뼈에 반응하듯, 지면 아래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건 단순한 지각의 흔들림이 아니었다. 땅속에 매장된 또 하나의 고대 병기, 시간의 봉인 ‘오르카 메갈리스’가 깨어나려는 징조였다.
세란의 눈이 그 진동을 따라 멀리 닿는다. 시간의 흐름이 반대로 흘러가며, 망각된 전쟁의 파편들이 허공에서 되감기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이건…”
그녀는 과거의 전장을 본다. 별의 전사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첫 사제들이 그들의 유해 위에 문명을 세웠던 시간. 인간은 그 유산을 ‘기억’이라 불렀고, 신들은 그것을 ‘죄’라 규정했다.
그 모든 충돌과 모순이, 지금 그녀의 피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이다.
하늘의 뼈가 속삭인다.
>>“기억은 흐른다. 그러나 시간은… 선택된다.”<<
그리고 그 순간, 니할이 나타난다.
망각의 대군주.
잿빛 허공을 배경으로 한 줄기 그림자가 형체를 띠고 나타났고, 그 속에는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가 서 있었다.
>“세란. 우리 둘 중 하나가 끝을 만들어야겠지.”
그 목소리는 공허했지만, 기이하게 따스했다.
세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뻗었다.
하늘의 뼈가 반응했고, 시간의 장벽이 찢어졌다.
두 존재는 이제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엔 기억과 망각, 우주와 공허,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있었고, 그 교차점에서 새로운 문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이제, 시간의 뼈가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