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2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372장: 파편의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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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공의 조각에서 부유하던 의식들이 깨어났다. 그들은 오래전 멸망한 행성 '누제트라'의 잿더미 속에서 구조화된 존재들, ‘파편의 사제들’이라 불리던 자들이었다. 그들의 기원은 하나의 규칙, 하나의 명제에 불과했다.
>>“기억은 반복되고, 반복은 구조가 된다.”<<
이 명제를 중심으로 존재했던 그들은 하늘의 뼈에서 떨어져 나온 시간편의(片儀)를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었다.
대기권 아래, 카타노스 협곡.
짙은 자철광과 붉은 유황이 자욱한 그 지하 협곡 속에는 단 한 줄의 바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 무풍(無風)의 공간 속에서 갑자기 무형의 파동이 일었다. 대지와 하늘, 정맥과 뇌파 사이를 가르는 메아리.
그리고 그 안에서 열두 명의 사제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으나, 가면의 패턴은 각기 달랐다. 태양의 상형문자, 달의 흐름, 별의 붕괴, 꿈의 기호, 기억의 나선 등… 각자 하나의 기억 체계를 관장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하늘의 뼈를 해독하고, 파편 속 메시지를 읽어내는 ‘기억언어’의 최후 전승자들이었다.
>“너희는 잊은 자들이며, 우리는 기억하는 자들이다.”<
가면의 수장이 말을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렉투스(Lectus), ‘제1기억소환자’였다. 그가 들고 있던 검은 수정구슬은 유성화가 꿈에서 본 검은 사자의 눈과 같은 파동을 뿜어냈다.
>“하늘의 뼈는 부서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분해된 것이다. 이 세계가 분해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무성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세계를 되돌릴 수 있습니까? 무(無)로부터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렉투스의 대답은 단호했다.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파편들을 이해하면 다음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묘심이 눈을 찌푸렸다.
“다음 구조라니… 세계가 하나 더 있단 말인가요?”
>“하늘의 뼈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전 구조에서 '탈출'한 것이다.”
그 말은 곧 진실의 파편이자, 거대한 충격이었다.
소랑은 멀리서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자신이 깨어난 곳은 과연 ‘현실’인가? 아니면 ‘구조가 바뀐 세계의 모형’ 일뿐인가?
그는 자신의 손바닥에 남은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떤 감각은 말해주고 있었다.
이 세계는 기억으로 짜여 있다.
내가 잊으면 사라지고, 내가 기억하면 존재한다.
그때, 파편의 사제 중 한 명-가면의 무늬가 ‘잊힌 강의 곡류’를 상징하는 제9사제-가 소랑에게 다가왔다.
>“네 안의 파편은 너무 깊다. 아직 수집되지 않은 기억들이 너를 괴롭히겠지.”
“기억은 저주인가, 해방인가?”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네가 선택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선택할 것이다.”
그는 소랑의 손을 잡고 이끌며 말했다.
>“우리는 너를 도우러 왔다. 너는 사자(死者)였고, 지금은 사도(使徒)다. 네 기억 속에 아직도 ‘하늘의 문’이 닫히지 않았으니까.”
유성화는 협곡 위의 단단한 암반 위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렉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의 검은 사자는 각성의 문 앞에 있다. 너의 다음 기억을 받아들여야 그가 완전한 형상이 된다.”
그 순간, 유성화의 눈앞에 다시금 검은 사자의 눈이 떠올랐다. 단지 비전이 아니라, 뼛속 깊이 울리는 진동이었고, 그것은 마치 새로운 의식을 주입하려는 듯 그녀의 감각을 전부 잠식해 왔다.
“지금부터 우리는 '기억의 연설'을 시작하겠다.” 렉투스가 외쳤다.
열두 명의 사제들이 원형으로 둘러서고, 하늘의 뼈에서 떨어진 파편들을 중심으로 기하학적 문양이 형성되었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패턴, 신경망의 연쇄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
>> “잊힌 자들이여, 일어나라.
>> 기억하라, 피로 씻긴 시간의 껍질을.
>> 너희는 그 잔해 속에서 태어났고,
>> 이제 다음 세계를 지을 자들이다.”<<
사제들의 언어는 현실을 흔들었다.
땅이 떨리고, 하늘이 금이 갔다.
하늘의 뼈는 다시 공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