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인 빨래방의 몽상가들]

A - 3

by FortelinaAurea Lee레아

은하가 남자에게 셔츠를 건네주자, 그녀의 손에 남겨진 그 따스한 온기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그 순간, 세탁기에서 '딩' 소리가 나며 돌아가던 소리가 멈췄다. 마치 모든 시간이 멈추고, 그 짧은 순간에 빨래방 안의 공기가 묘하게 변화한 듯했다.

“저는 태오라고 합니다,” 남자가 셔츠를 입으며 은하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그의 웃음은 은하의 가슴 깊숙한 곳에 무언가를 두드리는 듯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저는 은하예요. 여기 주인이에요.”


“멋진 곳이네요,” 태오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빨래를 하러 왔는데,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요. 이런 곳에서 매일 지내면 사람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네요.”


은하는 태오의 말에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가끔 그들의 삶이 빨래처럼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때로는 빨래를 돌리며 자신을 정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때 지훈이 슬쩍 끼어들었다. “당신도 사진 찍는 거 싫지 않으세요, 은하 씨?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다름 아닌 우리 일이죠.” 지훈은 태오를 다시 한번 향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래도 허락은 받아야죠,” 태오가 장난스럽게 대꾸하며 카메라를 손으로 가렸다. 지훈은 태오의 말에 살짝 웃으며 카메라를 내렸다. “알겠어요, 그럼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 이런 우연의 순간은 놓치기 아까워서요.”


태오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지만 한 장이면 충분해요.”


지훈은 그를 향해 카메라를 들어 집중했다. 순간, 셔터가 눌리는 소리와 함께 태오의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그 순간이 영원히 고정된 듯했다.


바로 그때, 빨래방 문이 다시 열리며 혜원이 들어왔다. 혜원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헝클어진 머리와 지저분한 집시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고 투덜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이 분위기. 무슨 연애라도 하는 줄 알겠네.”


태오는 혜원의 독특한 모습에 놀랐지만, 금방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혜원은 태오를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내가 재미있다고? 내가 얼마나 심각한 사람인 줄 알아? 난 세상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소설가야. 그런데 매일 세탁기만 보고 있지.”


“그럼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시면 되겠네요,” 태오가 응수했다.


“쉽지 않아. 세상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거든,” 혜원이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며 말했다. 그녀는 늘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지만, 은하와 지훈, 그리고 태오가 있는 이곳에서는 그 복잡함이 잠시 잊혔다.


그 순간, 빨래방 밖에서 검은 고양이가 문 앞에 나타났다. 고양이는 마치 빨래방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는 듯, 조용히 문 앞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웅덩이를 들여다보는 까마귀 서너 마리가 있었다. 그들은 마치 이 빨래방 안에서 벌어질 무언가를 예감하는 듯했다.


은하는 고양이와 까마귀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마치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순간, 태오의 세탁기에서 다시 한번 '딩' 소리가 울렸다. 빨래가 끝난 것이다. 그 소리와 함께 빨래방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제 제 옷이 다 말랐나 봐요,” 태오가 말했다. 그는 세탁기에서 셔츠를 꺼내며 고운 눈으로 은하를 바라보았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은하 씨. 이 빨래방, 그리고 이 사람들 덕분에 뭔가 중요한 걸 깨달은 것 같아요.”


은하는 그에게 가볍게 웃어 보였다. “다음에 또 오세요. 여기선 언제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니까요.”


태오는 셔츠를 입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그가 떠난 후에도 은하의 가슴속에는 그와 함께한 짧은 시간이 길게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세탁기들이 윙윙 돌아가기 시작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코인 빨래방의 몽상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