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은 태오를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내가 재미있다고? 내가 얼마나 심각한 사람인 줄 알아? 난 세상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소설가야. 그런데 매일 세탁기만 보고 있지.”
“그럼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시면 되겠네요,” 태오가 응수했다.
“쉽지 않아. 세상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거든,” 혜원이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며 말했다. 그녀는 늘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지만, 은하와 지훈, 그리고 태오가 있는 이곳에서는 그 복잡함이 잠시 잊혔다.
그 순간, 빨래방 밖에서 검은 고양이가 문 앞에 나타났다. 고양이는 마치 빨래방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는 듯, 조용히 문 앞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웅덩이를 들여다보는 까마귀 서너 마리가 있었다. 그들은 마치 이 빨래방 안에서 벌어질 무언가를 예감하는 듯했다.
은하는 고양이와 까마귀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마치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순간, 태오의 세탁기에서 다시 한번 '딩' 소리가 울렸다. 빨래가 끝난 것이다. 그 소리와 함께 빨래방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제 제 옷이 다 말랐나 봐요,” 태오가 말했다. 그는 세탁기에서 셔츠를 꺼내며 고운 눈으로 은하를 바라보았다.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은하 씨. 이 빨래방, 그리고 이 사람들 덕분에 뭔가 중요한 걸 깨달은 것 같아요.”
은하는 그에게 가볍게 웃어 보였다. “다음에 또 오세요. 여기선 언제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니까요.”
태오는 셔츠를 입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그가 떠난 후에도 은하의 가슴속에는 그와 함께한 짧은 시간이 길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