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시간의 경계에서
2025년 1월 09일 목요일
제24장: 시간의 경계에서
루멘스호는 우주의 심장을 떠난 뒤, 씨앗의 지시를 따라 새로운 항로를 설정했다. 이번엔 과거와 미래가 뒤엉킨 듯한 공간이었다. 선원들은 점점 낯선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항로 곳곳에 빛나는 소용돌이들이 떠다니고 있었고, 그 소용돌이 안에는 마치 시간의 파편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곳은… 시간의 경계인 것 같아." 아르카가 조종석의 데이터를 확인하며 말했다. "소용돌이들은 시간이 일그러진 흔적이야. 우리에게 이곳으로 가라는 건 시간 자체와 대면하라는 뜻인 것 같아."
리안이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를 보았다. "시간과 대면한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루미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긴 이미 우리가 아는 물리 법칙을 초월했어. 이제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는 의미가 없겠지."
카이라는 조용히 씨앗을 바라보았다. 씨앗은 점점 더 강렬한 빛을 발하며 선원들에게 한 가지를 암시하고 있었다. "우린 이곳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해. 시간의 경계가 우리에게 답을 줄 거야."
루멘스호가 소용돌이 가까이 접근하자, 함선 내부의 시간도 이상한 방식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선원들의 기억이 현실과 섞이기 시작하며 혼란이 찾아왔다.
리안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있던 순간을 다시 체험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게… 과거야. 하지만 너무 생생해."
아르카는 자신이 미래에서 이미 기술 혁명을 이루는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이건 내가 꿈꾸던 모습이야. 하지만… 너무 완벽한데?"
루미라는 자신의 문명이 파괴되기 전의 고향 행성에 서 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건 진짜일 리 없어. 하지만 너무 그리운 풍경이야."
그리고 카이라는 자신이 만든 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진 미래를 보았다. 그것은 밝고 희망찬 세상이었지만, 동시에 그 과정에서 그녀가 잃었던 것들도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그때,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빛나는 존재가 나타났다. 그것은 시간의 수호자처럼 보였고, 모든 시간의 흐름을 관장하는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너희는 시간을 초월하려 하는 자들이다." 수호자는 낮고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시간을 다룬다는 것은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지는 것이다."
카이라는 그 앞에 나서며 물었다. "우리는 우주의 비밀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 시간을 초월하지 않고서는 진실에 도달할 수 없지 않나?"
수호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우주의 기억이다. 너희가 진실을 원한다면, 이 기억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수호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각 선원들은 개별적인 시험에 들어갔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 자신이 가장 후회했던 순간, 혹은 가장 이루고 싶었던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리안은 과거로 돌아가 가족을 구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난 과거를 바꿀 수 있어도, 지금의 나를 잃고 싶진 않아. 난 지금의 나로서 앞으로 나아가야 해."
아르카는 자신이 만든 기술이 인류를 구원하거나 파멸시킬 수 있는 두 가지 미래를 보았다. 그는 결국 기술이 아닌 사람들의 의지에 의존하기로 선택했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야. 인간의 마음이 그것을 이끌어야 해."
루미라는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와 새로운 미래를 열 기회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미래를 선택했다. "내 고향은 사라졌어.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거야."
카이라는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희망찬 미래와, 그녀가 잃은 것들로 가득한 현실 사이에서 고뇌했다. 그녀는 결국 현실을 선택하며 말했다. "희망은 완벽함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야."
모든 선원이 시험을 통과하자, 수호자는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너희는 시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이제 너희에게 우주의 다음 비밀을 맡기겠다."
소용돌이가 갑자기 사라지며, 루멘스호는 새로운 항로로 던져졌다. 선원들은 여전히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카이라는 씨앗을 손에 쥐며 다짐했다. "이제 우린 시간조차도 넘어섰어. 다음엔 어떤 비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린 준비됐어."
루멘스호는 다시 한번 새로운 우주의 비밀을 향해 나아갔다. 이번엔 씨앗이 가리키는 최종 목적지가 그들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