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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 인 ]

월인-달빛 아래의 희생

by FortelinaAurea Lee레아

월 인

세상이 아직 안정되지 못하고, 사람들은 자연의 섭리와 신의 이치를 거스르며 억겁의 세월을 헤매던 시절이었다. 이 시대는 낮과 밤의 경계가 흐릿하고, 인간과 신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혼란의 시대였다. 세상은 풍파 속에서 신음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 시대 속,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한 사내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월인(月人)**이라 불렀다. 달처럼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며 고요히 존재하는 이 사내는 마치 세상의 이치를 모두 꿰뚫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이름도, 고향도, 나이도 알 수 없었으나, 수천 년을 살아온 존재라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월인은 호수 위에서 홀로 낚시를 즐겼다. 달빛에 비친 그의 모습은 때로 신비롭고 때로 고독해 보였다. 사람들은 그가 호수에서 무엇을 낚는지 궁금했지만,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갈 수 없었다. 그의 낚싯줄은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세월의 파편과 인간의 인연을 건져 올린다는 전설이 전해졌다.



어느 날 밤, 호수 위에 은빛 안개가 내려앉던 순간이었다. 월인은 평소처럼 낚싯대를 드리우고 호수 위에 앉아 있었다. 그때 낯선 여인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여인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으며, 긴 머리카락은 달빛에 반짝였다. 그녀는 고요한 눈빛으로 월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바로 월인인가요?"


그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수천 년을 살아오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녀와 같은 기운을 가진 이는 처음이었다.


"그렇다. 그러나 이 밤중에 이곳에 오다니, 너는 누구냐?"


여인은 천천히 다가와 호숫가에 무릎을 꿇었다.


"저는 서연(書緣)이라 합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삼백 년의 세월을 기다려왔습니다."


서연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죽지 않는 저주를 받아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 월인을 찾아왔고, 그와 얽힌 인연이 삼천 년 전부터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서연은 삼천 년 전, 한 인간 왕국의 공주였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했지만, 사랑의 대상을 두고 질투한 마녀의 저주를 받아 시간이 멈춘 채로 살아가야 했다. 그녀는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니었고, 세상을 떠돌며 저주를 풀기 위한 해답을 찾아야 했다.


월인은 서연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인간의 인연을 건져 올리며 살아왔지만, 그녀와 같은 존재는 처음이었다. 서연의 저주는 단순한 마녀의 분노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운명은 세상의 혼란과 연결되어 있었고, 월인 또한 그 운명의 일부였다.


"네가 말하는 저주란, 결국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러나 그 저주가 너를 여기까지 오게 했으니, 인연이란 참으로 신비로운 것이다."


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는 그 저주를 풀기 위해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세상의 이치를 아는 분이니까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월인은 그녀의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저주를 풀기 위해선 월인이 지켜온 세상 질서의 균형을 깨뜨려야 했다. 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뒤흔드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두 사람은 점점 더 깊은 인연으로 얽히게 되었다. 서연은 월인에게 인간의 감정과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었고, 월인은 서연에게 신비와 질서의 의미를 전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끝날 수 없었다.


월인은 서연의 저주를 풀기 위해 호수 깊은 곳에 잠든 달의 거울을 찾아야 했다. 그 거울은 세상의 진실을 비추는 신성한 물건이었으며, 그것을 사용하면 서연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거울을 깨우는 대가로 월인은 자신의 존재를 잃어야 했다.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선택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야."


서연은 눈물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


"당신의 존재가 없어진다 해도, 저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남아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달빛 아래의 희생


두 사람은 달빛 아래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서연은 월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당신이 없다면 저는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면,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겠습니다."


월인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속삭였다.


"내가 없어도 너는 이 세상을 비추는 달빛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마침내 월인은 호수의 심연으로 들어가 거울을 깨우는 의식을 치렀다. 달빛이 호수를 감싸고, 서연의 저주는 풀렸다. 하지만 월인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서연은 월인의 희생을 가슴에 새기며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월인의 뜻을 이어받아 혼란스러운 세상을 정리하고, 세상에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달이 뜨는 밤이면 그녀는 호수에 찾아가 월인의 낚싯대를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에서 잔잔히 흔들리는 낚싯줄은 여전히 세월을 낚으며, 두 사람의 억겁의 인연을 속삭이는 듯했다.


끝없는 세월 속에서, 달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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