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달빛 아래의 낚시꾼
제1장: 달빛 아래의 낚시꾼
세상은 혼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천지는 어지럽고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했다. 왕국들은 흥망을 반복했고, 인간은 자신이 만든 욕망과 탐욕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혼란 속에서도 달빛은 여전히 고요히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 아래, 잔잔한 호수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한 손에 낚싯대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오래된 목각상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었으나, 그 눈빛만큼은 나이를 초월한 고요함과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월인(月人)**이라 불렀다.
월인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왔다. 그는 삼천 년의 세월 동안 호수를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낚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가 단순히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이치, 인간의 인연, 혹은 운명을 건져 올린다고 믿었다.
호수는 깊고 넓었으며, 달빛이 비칠 때마다 그 수면은 은빛으로 빛났다. 사람들은 감히 그곳에 다가가지 못했다. 월인의 존재가 그들을 두렵게 했고, 동시에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월인의 진짜 이름이나 그가 왜 이곳에 머무는지를 알지 못했다.
달이 완벽하게 둥근 밤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호수는 거울처럼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월인은 조용히 낚싯줄을 물속으로 던졌다. 그의 손놀림은 가벼웠으나, 그 눈빛은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는 낚시를 하며 세월의 흐름을 생각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변했고, 왕국들은 사라졌으며, 새로운 것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에게는 모든 것이 마치 반복되는 파도와 같았다. 인간의 욕망과 사랑, 슬픔과 기쁨은 결국 같은 물결을 이루며 흘러가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인연이 내게로 올 것인가?"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낚싯대를 천천히 감았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낚싯줄이 갑자기 팽팽해졌다. 마치 물속에서 누군가 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듯했다.
"이건 또 무엇이냐…"
그는 조심스럽게 줄을 당겼다. 그런데 물 위로 올라온 것은 물고기가 아니었다. 한쪽 끝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거울이 매달려 있었다. 거울은 낡았으나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월인은 잠시 거울을 들여다보며 눈을 찌푸렸다. 거울 속에는 그의 얼굴이 아니라 낯선 여인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이것은… 무슨 뜻이지?"
그가 거울을 들여다보는 순간, 주변의 공기가 변했다. 달빛이 더욱 강렬해지더니, 호수 건너편에서 희미한 실루엣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당신이 월인인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었다. 월인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월인이다. 하지만 너는 누구냐? 이 호수에 발을 들인 이는 오랜만이구나."
여인은 천천히 걸어와 그의 가까이에 섰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과 간절함이 어우러져 있었다.
"저는 서연이라고 합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오랜 세월을 헤매왔습니다."
월인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호수 위로 고개를 돌려 달빛을 바라보았다.
"네가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이 호수는 아무나 오를 수 없는 곳이다. 너의 발걸음이 이곳에 닿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
서연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저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저주를 풀기 위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월인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진실과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저주라... 인간이란 항상 자신이 풀 수 없는 것을 남 탓으로 돌리지. 하지만 네가 말하는 저주가 무엇이든, 그걸 풀기 위해선 네가 무엇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서연은 눈물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저는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게 제가 이곳에 온 이유입니다."
월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좋다. 네 이야기를 들어보마. 하지만 그 대가는 무겁다는 것을 잊지 마라. 너는 내게서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서연은 호숫가에 앉아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녀가 받은 저주는 단순한 마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과 배신, 그리고 오래된 신들의 복수가 얽혀 있는 운명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풀기 위해 월인의 지혜와 힘을 빌려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호수에는 여전히 달빛이 비치고 있었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 속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밤새 이어졌다. 그러나 이 만남이 단순한 인연이 아님은 월인도, 서연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