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억겁의 인연
제2장: 억겁의 인연
서연은 호숫가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며 그늘과 빛이 교차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깊고 길었으며, 슬픔과 후회로 물들어 있었다. 월인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삼천 년 전, 저는 인간의 왕국에서 공주로 태어났습니다."
서연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우리 왕국은 풍요롭고 평화로웠지만, 모든 행복은 짧게 끝나기 마련이었습니다. 저는 한 마법사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인간의 세계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죠. 우리의 사랑은 금기였고, 결국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월인은 서연의 눈빛 속에서 억눌린 고통과 후회의 흔적을 읽었다. 그는 가만히 낚싯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나 보구나. 그러나 그것이 어찌하여 삼천 년의 저주로 이어졌는가?"
서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저는 그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우리 왕국을 구하기 위해 금단의 주문을 사용했습니다. 그 주문은 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었고, 그 대가로 저는 영원을 살아야 하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모든 이들이 제 곁을 떠나갔고, 시간은 저를 배신했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고통뿐이었습니다."
월인은 서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한순간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러면 네가 이 호수에 온 이유는 무엇인가? 네 저주를 풀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과거를 되돌리고자 하는 것인가?"
서연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렸다.
"저는 저주를 풀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세상에 남겨진 혼란을 바로잡고 싶습니다. 당신이 낚아 올리는 그 인연의 끈 중 하나가, 저를 구원할 열쇠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월인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는 자신의 낚싯대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서연이 말한 인연의 끈. 그것은 월인이 오랜 세월 동안 찾고자 했던 무언가와 닮아 있었다.
"네 저주를 푸는 것은 단순히 너의 문제가 아니다. 네가 말한 대로, 그것은 세상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쉽게 너를 도울 수 없다. 너는 그 대가가 무엇인지 알기나 하느냐?"
서연은 고개를 들고 월인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고 있습니다. 대가는 당신의 희생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월인은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 사실을 알고도 이곳에 왔다면, 너는 생각보다 단단한 자이구나. 좋다. 그러나 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네가 스스로 과거와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네가 숨기고 있는 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월인은 낚싯대를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서연을 데리고 호수 한가운데로 향했다. 호수 위에는 달빛이 비치며 수면을 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월인은 손을 뻗어 호수 위에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호수의 물이 파동을 일으키더니, 이내 중앙에 거대한 거울이 떠올랐다.
"이 거울은 세상의 진실을 비추는 호수의 거울이다. 네가 풀어야 할 저주와 마주하려면 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 거울은 네 과거를 보여줄 뿐 아니라, 네가 숨기고 싶은 진실까지도 폭로할 것이다."
서연은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무엇을 보게 되든, 그것이 저를 구원할 길이라면 피하지 않겠습니다."
월인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거울 속에서 네 과거를 찾고, 네 저주를 풀 방법을 깨달아라. 하지만 기억해라, 거울이 네게 진실을 비추어도 그것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너는 영원히 그 안에 갇힐 것이다."
서연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자 주변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 왕국의 성벽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곳은 삼천 년 전 그녀가 떠나온 고향이었다. 성벽 너머로 그녀의 과거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마법사와의 첫 만남, 그리고 그와의 사랑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사랑은 왕국의 반대와 마녀의 저주로 인해 비극으로 치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한 선택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빠뜨렸는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울은 그녀에게 또 다른 진실을 비추었다. 그녀가 저주를 받기 전에 했던 마지막 선택,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의 대가로 무언가를 잃어야 했던 순간들.
"이 모든 것이… 내가 초래한 결과였어."
서연은 거울 속에서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 울음소리 속에는 후회와 함께 새로운 결의가 섞여 있었다.
월인은 호숫가에서 서연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후, 그녀가 거울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과 고통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단단한 결의가 느껴졌다.
"저는 진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주를 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십시오."
월인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진실을 직시했다면, 이제 네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네가 다시 선택의 순간에 서게 될 때, 이번에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네 운명을 바꾸는 길이다."
그러나 월인은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올바른 선택은 곧 자신을 희생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달빛 아래, 새로운 운명의 톱니바퀴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