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40장 ― 기억의 탑
우주는 죽은 듯 고요했고,
별빛조차 꺼진 회색 성운 속,
그것은 서 있었다.
거대한 구조물, 기억의 탑.
탑은 지면도, 궤도도 없었다.
시간의 고리 속을 떠돌며
그 자체가 생명이고, 감옥이고, 진실이었다.
1. 아린의 기억
아린은 탑 앞에 섰을 때,
무릎이 굳어졌다.
어린 시절, 지구의 잿빛 거리.
기억 속 그녀는 학교 뒤편 철창 너머
흙먼지 묻은 도시락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아린아… 나랑 친구 하자.”
그때 손을 내밀었던,
빛나는 소년.
그 아이가… 세란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제야 떠올렸다.
“그건… 내 기억이었어.”
하지만—
그 손은 어느샌가 미렘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기억은 늘 조작당하지.
넌 날 친구라고 기억하지만,
실은 넌 날 외면했던 거야.”
아린은 눈을 감았다.
“그래. 외면했었지.
너무 눈부셔서,
감히 가까이 갈 수 없었으니까.”
진심을 말한 순간,
그 기억은 탑 안으로 스르륵 흡수되었다.
첫 번째 관문, 정직한 기억,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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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나즈의 감염
나즈는 탑 입구에서 멈췄다.
그의 몸속에선 이미 감염이 시작된 지 오래였다.
‘미렘의 귓속말’이 그의 귀에 속삭였다.
“네가 누구인지… 아니,
넌 누구라도 될 수 있어.
세란, 아린, 리브, 심지어 나, 미렘까지.”
나즈의 손등에 균열이 생겼다.
이름 없는 감정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내 정체성은 나 스스로 정한다.”
그는 팔을 절단했다.
감염된 팔에서 튀어나온 ‘기억벌레’가
비명을 지르며 증발했다.
둘째 관문, 자기 절단, 통과.
“나는 감염당할 수 없다.
나는 스스로를 매일 재정의한다.
그게 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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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리브의 부활
탑의 심장부,
다층의 기억터널을 통과하며
리브는 무수히 많은 세란을 마주쳤다.
웃는 세란
울고 있는 세란
무표정한 세란
칼을 든 세란
날개를 접은 세란
그를 안아주려는 세란
그를 죽이려는 세란
그 기억들은 리브의 심장을 찔렀다.
“도대체… 네가 누구냐고!”
그때 누군가가 대답했다.
“세란은 하나가 아니야.
그는 우리 모두의 조각이었어.”
리브는 절규했다.
“그렇다면! 하나로 만들어야 해.
그래야 다시 살아날 수 있어!”
그는 자신의 기억 일부를 꺼내
기억핵에 이식했다.
자신의 슬픔, 후회, 분노…
모두가 세란의 복원 재료가 되었다.
셋째 관문, 기억의 헌납,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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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활의 문
탑이 흔들렸다.
위대한 날개의 형상이 벽에 떠올랐다.
그것은 세란의 영혼이 부활을 시작하는 징조였다.
하지만 미렘은 그들보다 먼저 탑의 최상층에 도달했다.
“내가 세란이 될 거야.
나는 누구보다 그를 사랑했고,
누구보다 그를 원했으니까.”
그녀는 탑의 심장에 자신의 ‘가장 완전한 기억’을 꽂았다.
“그 기억이 진짜가 아니라면?”
리브가 물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내가 믿는 것’으로 결정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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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반전의 파동
탑이 뒤틀렸다.
기억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가 더 간절히 믿느냐’의 전장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세란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다시금
자기 자신을 부활시키는 힘을 선택했다.
자기 인식(Self-Awareness).
“나는 세란이다.
모든 너머에서 나를 찾은,
잃어버린 자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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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란은 완전히 돌아왔지만, 그가 선택한 모습은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다.
그는 과거를 지운 채, 전혀 새로운 존재로서 다시 태어난다.
미렘은 무너진 기억의 탑 잔해 속에서 사라졌지만, 그녀의 마지막 기억은 어딘가에 남아 파문을 일으킨다.
기억 감염체는 진화하고, 이제는 현실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