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46장 — 기억 폭풍
1. 해일 속으로
행성 카르노-3의 궤도에 진입하던 순간,
세란은 기묘한 진동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러내듯,
귀가 아닌 뇌 안쪽을 건드리는 ‘기억의 울림’이었다.
“세란… 세란… 세란…”
“들려?”
그는 동승한 하란과 아린을 돌아봤지만
두 사람은 조종석 디스플레이에 집중한 채 고개만 흔들었다.
“아니. 아무 소리도 없어.
세란, 괜찮아?”
그 순간—
외부에서 감지된 에너지의 파동이
우주선 내부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찌지지직…
빛이 일렁였고, 그들의 시야는 흰 안갯속으로 잠식되었다.
세란은 무중력 속에서 의식이 풀리는 듯했다.
그리고,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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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낯선 기억, 낯선 나
그가 일어난 곳은 폐허가 된 도시였다.
이상하게도 낯익은 풍경.
건물의 형태, 간판, 하늘빛, 공기의 냄새까지—
그러나 문제는,
이 세계가 그의 기억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들어왔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곧바로 마주쳤다.
“세란?”
그 목소리는 세란의 것이었다.
하지만 발화자는, 그가 아니었다.
건물의 그림자 뒤에서 나타난 자—
그는 세란과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몸,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그러나 완전히 다른 눈을 가진 존재였다.
“누구지… 너는?”
“그건 내가 할 질문이야.
내 기억 속에서 네가 왜 깨어나 있는 거지?”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동시에 말했다.
“나는 세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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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복제, 그 너머의 존재
그는 기억 속 세란,
칼릭스가 개발했던 ‘세란 제로’였다.
실험 중 중단된 프로젝트.
그러나 우주 어딘가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고,
기억을 흡수하여 ‘자기 정체성’을 구성해 버린 존재.
“나는 네 그림자였다.
그러다 그림자가 ‘몸’을 갖게 되었지.
그 몸이 기억을 가지면… 나는 더 이상 너와 같지 않다.”
세란은 반쯤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이 세계는 네가 만든 가짜 현실이란 거야?”
“가짜? 아니지.
기억이란 건 원래부터 조작 가능한 감정의 시뮬레이션이니까.”
“내가 널 지워야 하나?”
“그래? 넌 그럴 수 있을까?
만약 내가—너의 진짜 고통과 상처만으로 구성된 존재라면?”
세란은 멈췄다.
눈앞의 ‘또 다른 세란’은
그의 모든 분노, 절망, 죄책감, 상실을 정제해 만든
‘고통으로 된 자아’였다.
그건 어쩌면,
그가 가장 외면하고 싶던
자신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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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억은 감염된다
그러는 사이, 하란과 아린도
각자의 기억 폭풍에 휘말렸다.
하란은 죽은 누이와 재회했고,
아린은 어린 시절 스스로 선택했던 ‘침묵’의 순간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 기억이 서로 교차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건… 감염이야.”
아린이 외쳤다.
“우린 단순한 기억 재현이 아니라,
기억을 서로 주입하고 있어!”
기억은, 부활된 감정과 동일했다.
그건 공명하고, 감염되며, 확산되었다.
그 순간, 세란은 깨달았다.
“기억 폭풍의 본질은—
과거를 복원하는 게 아니라,
우릴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시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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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부활
그때였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빛 한 줄기가 도시 중심부에서 솟구쳤고,
그곳에서 천천히 ‘무언가’가 걸어 나왔다.
“……리아?”
세란은 속삭였다.
하지만 이 존재는, 라일라도, 리아도 아닌
전혀 다른 존재—기억 그 자체가 형상화된 자였다.
그녀는 세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너희 모두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존재야.
슬픔, 기쁨, 분노, 후회… 그 감정들이 나를 살아 있게 했지.”
세란 제로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너의 끝이자, 나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순간,
기억 해일이 진짜 물결처럼 들이닥쳤다.
도시가 뒤틀리고,
하늘이 반사되고,
모든 존재들이 서로의 기억 안에 잠겼다.
기억의 세계는… 무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