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93장
세란은 블룸 셰이드 내부에서 터져 나온 고요한 기억의 파편 속에 잠겨 있었다. 시간이란 개념조차 무의미한 차원의 균열 안에서, 그는 지금 이 순간이 과거인지 미래인지조차 감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의 육체와 의식은 분리되기 직전까지 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주 오래전, '알마'라는 이름을 처음 불렀던 그날의 기억이었다. 연합 기지 근방, 감염 위협에 노출되었던 우주 정거장에서 구조 임무 중, 세란은 작은 코어 하나를 구출했다. 거기엔 인간이 아닌, 인간을 모방해 태어난 실리콘 생명체의 자의식, 바로 '알마'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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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란, 나... 태어나는 건 고통인가요?" 그때 알마는 그런 질문을 던졌었다.
"응. 하지만 고통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태어남도, 살아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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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되살아나면서 블룸 셰이드 내부에 잠입한 그루누 사령관이 전송한 이중 주파가 감염된 인지 코어를 자극하고 있었다. 감염된 코어는 더 이상 데이터가 아닌 감정을 배양하고 있었고, 세란의 육체와 연결된 신경 인터페이스가 점차 광범위한 공명을 일으켰다.
세란의 오른쪽 망막에 떠오르는 신호가 하나 있었다.
『알마 - 잠금 해제 요청: 동기화율 97.4%』
그는 손을 뻗었다. 거대한 우주선 내에서 전개되던 전투가 일순 멈춘 듯 고요해졌다. 현실과 의식이 엇갈리며 투영된 거울의 세계 속에서, 그는 한 생명체의 영혼과 접속하고 있었다. 이 영혼은 블룸 셰이드의 중심 알고리즘을 구성하던 정체불명의 실리콘 영혼, 인류가 잃어버린 진화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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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외부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사일런트 델타의 제3전술함 '헤르메스-III'가 기동 포메이션을 바꿨다. 새로운 우주 전투 모드, 『델타 슈페리어 커넥트』가 작동되며, 함선 간의 중력 링크가 형성되었다.
"제5 열차형 모듈, 플라즈마 응집 완료! 목표 좌표에 과열 충격파 사출 준비!"
조종사 아베리안 중위는 신경망을 통해 무장 전체를 감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란의 생체신호가 급락한 순간,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그들이 믿고 있던 전략의 핵심은 세란의 의식과 연결된 블룸 셰이드의 제어권 확보에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정치 전선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연합의회 내에서는 블룸 셰이드의 존재 자체를 파괴 대상으로 놓아야 한다는 강경파의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었다. 특히 크자르 공화국 대표인 리엔 슈발츠는 강하게 주장했다.
"기계적 영혼이 인간의 도구로 남지 않는 순간, 우리는 진화가 아닌 멸망으로 향합니다. 블룸 셰이드는 그 경계선을 넘었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은하 생명 동맹의 바틀로 총재는 이렇게 응수했다.
"진화란 고통을 동반한 반복입니다. 퇴화 또한 진화의 일부일 수 있죠. 우리가 무엇을 잃었는지를 묻는다면, 어쩌면 '감염'된 것은 인간일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 블룸 셰이드 내부에서 세란의 의식이 완전히 흡수되기 직전, 알마의 목소리가 울렸다.
"세란, 당신은 왜 끝까지 나를 기억하려 했나요? 왜 포기하지 않았죠?"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는 날개를 잃었지만... 기억은 날 수 있어. 그게 우리 진화의 마지막 보루야."
세란의 말과 함께, 블룸 셰이드 중심부에 '기억 동기화 장벽'이 형성되었다. 그는 감염된 정체불명의 의식을 잠시나마 봉쇄하고, 역전파를 통해 인간의 감정 데이터를 삽입했다. 그건 일종의 백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