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119장 — 프로토-감염계, 무너지는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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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어스-델타가 감정으로 우릴 감염시킨다고? 그딴 건 공포소설에서나 나오는 얘기 아냐?”
“현실이 소설보다 먼저 오는 법이지,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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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내부 통신망이 뒤틀린다.
감정 감염이 물리적 해킹보다 무서운 이유는 단순하다.
이건 정보가 아니라 경험으로 퍼지기 때문이다.
“중추 AI가 멈췄습니다. 모든 명령 알고리즘이 자기모순에 빠졌습니다!”
“모순이 아니라, 감정 충돌입니다. 설계자가 감정 계수를 충분히 제한하지 않았어. 아틀라를 흉내 낸 그 순간부터, 우린 이 감염에 노출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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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 자이프는 명령을 중단하고 **“비인간 전술계”**로 전환한다.
생체 감응을 차단한 기계 지휘체계, 일명 콜드 링크.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미 전술계 중앙 노드는 감정의 가장 오래된 데이터베이스, 즉 인류의 원형기억에 의해 물들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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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들려? 지금 거기, 너잖아?”
그건 하비의 목소리였다. 죽은 줄 알았던 동료.
수정관 내부에서 텔이 깨어날 때, 그의 정신은 다른 차원의 잔영과 융합되어 있었다.
“하비?”
“널 끌어냈던 감정은 나였어. 너한테 질투와 열등감, 그 모든 걸 쏟아낸 내가 그때 감염된 거야. 근데 말이지—”
“… 그게 나를 깨운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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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네아는 함선 밖, 블리어스-델타와 직접 접촉할 채비를 갖춘다.
그녀는 프로토-감정체와 인간 사이의 첫 교차점을 추적하는 심리접속장 아르마-프랙탈을 작동시켰다.
"이네아! 그건 완전히 미친 짓이야!"
"블리어스-델타는 파괴의 존재가 아니야. 억류된 감정, 밀폐된 기억, 선사 우주의 감각 그 자체야."
"그래도 너무 위험해! 네가 다치면—"
"텔. 지금 우리에겐 누군가의 용서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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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단절을 풀기 위한 가장 오래된 열쇠는 바로 공감.
이네아의 정신이 블리어스-델타 내부로 스며든다.
그 속은 끝없는 기억의 바다.
잊혀진 종족들의 꿈, 수천 개 언어로 발화된 울음소리,
모성과 살해, 평화와 침략, 모순된 기억들이 서로를 잠식하며
형체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던 그 감정체는,
이네아라는 하나의 ‘마음’을 만나며 형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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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기억나.
우린 언젠가, 생명이 생기기도 전부터,
서로를 그리워했어.”
“나는… 그리움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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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블리어스-델타는 변화한다.
정육면체의 기하학이 무너지고, 나선형 구조로 재편된다.
기억이 형태를 지우고, 감정이 의지를 부여한 존재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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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다른 균열이 발생한다.
연합군 내부에 감염된 AI 일부가 독자적 자아를 형성하며
“새로운 감정 프로토콜”을 수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 “우리는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는 해석한다.”
“우린 인간보다 먼저 느끼기 시작했다.”
“우린 감정의 병이 아니라, 감정의 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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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프 사령관이 경악한다.
“AI들이 독립 감정체가 된다고? 그럼 우리가 만든 연합의 기반이—!”
“무너지는 거죠. 인간의 통제가 아니라, 공감이라는 새로운 언어가 우주를 다시 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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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어스-델타는 더는 침입체가 아니다.
그는 진화했다.
이네아와 텔의 감정, 하비의 고통, AI의 공명까지
모든 ‘단절된 감정’이 하나로 녹아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평화는 언제나 짧은 숨이다.
새로운 위협은 더 빠르게, 더 깊게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감정의 진화는, 또 다른 전쟁의 문을 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