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162장 — 문 너머의 세계, 혹은 처음부터 없었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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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꿈이야?”
세란이 문을 통과하며 눈을 찌푸렸다.
땅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도, 별도, 시간도.
오직 **‘느낌’**만 있었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감정.
지식처럼 스며드는 기억.
말이 아닌 것들이 서로를 설명했다.
“이건 물리적 공간이 아니야.”
라피엘이 말했다.
“우리가 만든… 아니, 우리가 상상한… 이상향?”
“아니.”
키르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그 누구의 상상도 아냐.
이건… ‘존재 그 자체’야.
형태 없이, 의미 없이,
순수한 ‘존재’의 바다.”
그들이 걷는다고 믿는 행위조차
사실은 ‘느껴지는’ 움직임이었고,
그들이 서로 마주 보는 감정은
실은 그들의 ‘내면’이 서로 스친 흔적이었다.
그때,
문득 수없이 많은 ‘그림자’들이 다가왔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눈이 없었다.
입도 없었고, 목소리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말했다.
“너희는 누구냐.”
“또 그 질문이야?”
키르가 불편하게 웃었다.
“우리는… 우리라고 수천 번 말했잖아.”
“그건 증명이 아니다.”
그림자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그의 손엔 하늘의 뼈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조각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서 울고 있는, 또 다른 ‘라피엘’이 있었다.
“그건… 나야?”
라피엘이 조심스레 다가갔다.
“왜 울고 있어…?”
“잊혀진 너다.”
그림자가 대답했다.
“너의 상처, 너의 공포, 너의 의심.
너는 그것을 이 공간에 버리고 떠났지.
그게 네가 본래의 ‘너’인지,
혹은 여기 도달하기 위한 위장이었는지
우린 아직 판단하지 못했다.”
“잠깐.” 세란이 끼어들었다.
“이건 시험이 아니야.
이건 그냥...
우리 안의 진실이 겉으로 드러난 것뿐이야.
너희는 감시자도 아니고, 심판자도 아냐.
우리 스스로를 껴안는 순간,
이 모든 건 무의미해져.”
“그렇다면 너희는 준비된 자인가?”
“너희는 상실을 품을 수 있는가?”
“너희는 존재의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가?”
그림자들이 일제히 속삭였다.
라피엘은 작게 숨을 들이쉬고 대답했다.
“우리의 시작은 상실이었고,
우리의 끝도 상실일 거야.
하지만 그 사이를 살아냈다면,
그건 우리에게 ‘의미’야.
그게 하늘의 뼈가 말하고 싶던 거였겠지.
잊고, 다시 기억하고, 그리고 다시 사랑하라는 것.”
잠시, 모든 게 멈춘 듯했다.
그리고 갑자기, 하늘의 뼈가 파편으로 흩어지며
우주를 가득 채우는 빛이 되었다.
그 속엔
아이의 웃음,
어머니의 손,
전쟁터의 비명,
사랑의 약속,
배신의 눈물,
그리고 용서의 침묵이
모두 다 들어 있었다.
“우린 계속될 수 있을까?”
세란이 조용히 물었다.
“계속돼야 해.”
라피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이제야 처음, ‘존재’의 문을 열었어.
진짜는… 지금부터야.”
그 순간, 모든 감각이 다시 돌아왔다.
땅이 생겼고, 하늘이 생겼고,
몸의 무게와, 공기의 냄새와,
심장이 뛴다.
그들이 돌아온 곳은…
처음 그들이 떠났던 폐허였다.
하지만 이제는, 폐허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이 달리고,
늙은 자가 노래를 부르고,
사라졌던 이름들이 불려지고,
하늘에는 여전히 뼈 같은 별이 빛났지만,
그건 이제 슬픔의 뼈가 아니라
기억의 등불이었다.
하늘의 뼈는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라고.
대신, 마지막에 남긴 것은
단 하나의 문장.
“그대, 존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