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164장 — 침묵의 사원
---
“이곳이야. 전쟁 이전, 최초의 뼈가 발견된 자리.”
세란이 발밑을 가리켰다.
모래바람에 반쯤 묻힌 채, 정육면체 형태의 검은 석조물이 드러나 있었다.
그 형태는 언뜻 단순했지만,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이질감을 자아냈다.
무언가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의 문법과는 다른 무게로 존재해 온 것.
키르가 조심스레 손을 얹었다.
“… 이건 기억을 갖고 있어.”
“기억?”
“응. 만지는 순간, 내 머릿속에… 이상한 문장이 떠올랐어.”
라피엘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문장?”
“‘너는 잊는 것을 배우며,
잊은 것을 기억함으로써 존재한다.’
뭔가… 명령 같기도 하고, 철학 같기도 한데…”
“침묵의 사원이다.”
그 순간, 아이 중 하나—이름 없는 소년이 말했다.
“나… 꿈에서 이걸 봤어요. 이 사원이 붉은 하늘 아래에서 울고 있었어요.”
“어떻게 울 수 있지? 건축물이?”
세란이 묻자, 소년은 곧바로 답했다.
“벽에서 피가 흘렀어요. 그리고 어떤 목소리가 반복해서 말했어요.
‘나는 목격자다. 나는 잊혀져야 한다.’
그건 슬픔이 아니라… 자기 소멸의 기쁨처럼 느껴졌어요.”
그들의 주변, 바람이 잠잠해지더니 공기가 일렁였다.
사원의 문이 열렸다.
문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숨을 들이마시며 그들을 맞이했다.
키르가 먼저 발을 들였다.
“무섭진 않아. 이건 우리를 시험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의 진짜 ‘기억’을 꺼내려는 거야.”
사원 안은 완벽한 침묵이었다.
소리 하나 없이, 오로지 각자의 발소리와 심장박동만이 공간을 채웠다.
벽에는 조각 대신 문자가 떠 있었다.
문자들은 빛이 되어 공중에 부유하고 있었고,
누구도 읽을 수 없는 언어로 노래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라피엘이 그 빛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문자가 흩어지며 그의 눈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몸이 순간적으로 빛나더니,
그는 낮고 천천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기억을 수호하던 자다.
나는 존재의 뿌리를 지키던 자다.
그러나 내가 가장 먼저 잊혔고,
그 후에 모든 게 사라졌다.”
라피엘은 무릎을 꿇었다.
손을 가슴 위에 얹은 채,
그는 오랫동안 조용히 울었다.
“이 모든 건… 잊힌 자들의 기록이야.”
세란이 조용히 말했다.
“이 사원은 신전이 아니라, 무덤이었어.
잊힌 자들이 스스로의 존재를 묻기 위해 만든 곳.”
“그럼… 하늘의 뼈도?”
“그래.
그건 단순한 유물도, 무기도 아니야.
그건 ‘기억의 핵’이었어.
우리가 누군지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세상이 다 잊었을 때—
하늘의 뼈만이 그것을 간직하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사원의 심장부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거대한 결정체 하나가 고요히 부유하고 있었다.
그 안엔… 하나의 눈동자.
움직이지 않지만 살아 있는 눈동자가 있었다.
“하늘의 심장이다.”
키르가 속삭였다.
“우리 모두의, 모든 존재의 처음이자 마지막.”
그리고 그 순간,
그 결정체가 말을 걸어왔다.
‘너희는, 존재하길 원하는가?’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라피엘이 대답했다.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
먼 곳까지 왔다.
기억을 되찾고, 잊힌 이름들을 불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우린 존재하기를 ‘선택’한다.”
결정체가 천천히 붉게 물들었다.
사원 전체가 떨렸다.
그리고, 모든 빛이 그들을 감쌌다.
존재의 진동이, 다시 세계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