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165장 — 이름을 가진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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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야… 여긴?”
세란이 눈을 떴다.
빛이 사라졌고, 공기도 달라졌다.
사원의 내부였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차원의 층?
“우리가… 사라진 건 아니야.”
키르가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눈빛엔 놀라움과 확신이 동시에 있었다.
“오히려… 우리는 처음으로 실존한 거야.”
그들 앞에는 커다란 호수 같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이 없었고, 땅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방향으로 펼쳐진 거울 같은 표면이
그들을 비추며 말을 걸고 있었다.
“너희는 이름을 회복했다.”
“이제부터 너희는 잊혀진 자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가를 요구한다.”
라피엘이 그 음성을 따라 걸었다.
그의 발밑에서 표면이 물결치듯 일렁였다.
“대가란 뭔데?”
그는 물었다.
그때, 호수 위로 누군가가 떠올랐다.
검은 망토를 입은 한 인물.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존재는 라피엘과 무언가 연결된 듯 보였다.
“너는, 나야.”
“나는 네가 외면했던 기억.”
“네가 남기고 떠났던 세계의 잔해.”
라피엘은 숨을 삼켰다.
“너는… 아버지?”
키르와 세란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라피엘은 자신의 과거를 거의 언급한 적 없었다.
심지어 본명도 숨기고 있었던 그였다.
“그래. 넌 나를 지우고자 했지.
내가 만든 전쟁, 내가 감행한 실험,
내가 저질렀던 ‘신의 흉내’가 네게 수치였으니까.”
“당신은… 죽었어.
내 눈앞에서, 스스로 불태웠잖아.”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나는 ‘하늘의 뼈’ 안에서 살아 있었어.
기억으로, 부끄러움으로, 그리고—
너를 지켜보는 눈으로.”
세란이 갑자기 외쳤다.
“그만해! 이건 그의 길이 아니야.
과거가 묻고 있잖아.
넌 이제 답하지 말고, 선택해야 해.”
라피엘은 떨리는 손으로 검은 존재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난 널 증오했고, 사랑했고, 두려워했어.
하지만 이젠—
기억하겠어.
이름을 가진 아버지로서,
이름을 가진 아들로서.”
그 순간, 그 존재가 빛으로 부서졌다.
그리고 라피엘의 눈에서 붉은 눈물이 흘렀다.
키르가 그를 붙잡았다.
“우리 모두 각자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어.
하지만 그게 우리가 살아 있는 증거야.”
세란은 조용히 호수 중앙을 가리켰다.
그곳엔 단 하나의 조각,
검은 뼈의 형상을 한 ‘문장’이 떠 있었다.
그 문장은 누구도 읽을 수 없었지만,
세 사람 모두 동시에 그 뜻을 ‘이해’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세계를 잊지 않기로 했다.”
세란이 먼저 다가섰다.
“이제… 하늘로 돌아가자.”
그리고, 공간이 다시 흔들렸다.
‘하늘의 뼈’가 진동했고,
지금껏 봉인되어 있던 잊힌 이름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날, 침묵은 끝났고
이름은 다시 불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