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166장 — 무명의 종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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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뭐지…?"
세란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허공에 떠 있던 검은 뼈의 문장이
천천히 뒤틀리며 새로운 형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건 이제 단순한 기호가 아닌,
생명체였다.
"움직이고 있어."
키르가 말했다.
"저건… 살아 있어."
라피엘이 앞섰다.
"아니.
저건 기억하는 존재야.
하늘의 뼈가 기억으로 태어나는 걸 본 적 있나?"
검은 형상은 손도, 눈도, 입도 없었다.
그러나 그 형체는 공기의 결을 바꾸며
그들 주위에 무언의 언어를 흘렸다.
「무명(無名)의 종족이여.」
「너희는 너희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타인을 잊혔다 말하였도다.
그러나 잊힌 것은 너희 스스로였다.」
"… 무명의 종족?"
세란이 되물었다.
"우리가? 우리는 이름을 찾았어.
기억을 복구했고, 삶을 되찾았어."
그때, 검은 존재의 그림자가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림자 속에서 옛 의복을 입은 사람들,
사라진 고대 종족의 얼굴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입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눈은 단 하나의 사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당신들이 우리를 지웠다.”
라피엘의 등줄기를 서늘한 한기가 타고 흘렀다.
"그들은… 우리가 첫 번째로 식민화했던 항성계의 주민들이야.
그들의 언어를 지웠고,
기억을 왜곡시켰고,
그들의 하늘을— 이 '뼈'로 대체했지."
세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럼… 하늘의 뼈란…
억압된 기억들의 총합체?"
"그래."
라피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의 뼈는 죄의 구조물이야.
우리가 버린 진실들이 뭉쳐 만들어낸,
우주의 묘비지."
그 순간, ‘무명’의 형상이 터졌다.
검은 비명과 함께 주변 공간이 변형되었고,
그들은 이제 고대 우주의 추방지,
잊힌 성단 ‘아르-에노라’의 중심에 와 있었다.
"너희는 선택해야 한다."
새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한때 멸망했던 제4은하의 언어로.
"과거의 무게를 껴안고,
다시 하늘로 돌아가 모든 종족에게 진실을 전하든지,
아니면 여기서 무명의 한 조각으로
영원히 잠들든지."
키르가 입을 열었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잊어야만 했던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 잊힘은 생존이 아니라
반복이었다.
전쟁의, 탐욕의, 식민의 반복."
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선택하겠어.
무명을 복원하자.
그리고 우리가 누구였는지 말하자."
라피엘도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래.
다시 말해줘야 해.
이름 없는 자들의 언어로."
그러자 검은 뼈가 부서졌다.
빛과 기억, 언어와 눈물로.
그 속에서 진짜 하늘의 뼈,
하늘을 떠받치는 단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
그렇게 그들은
무명에서 다시 이름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